새로운 차별이 아닌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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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던 세상은,

서로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 꾼 것이지,
조선인이 일본사람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세상이 아니고
흑인이 백인을 매달겠다고 겁 주는 세상이 아니고
유대인이 독일사람을 가스실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상이 아니고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팔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이 아니고
젊은이가 나이 든 이를 꼰대라고 규정하는 세상이 아니고
여자가 남자를 ‘너희들도 당해봐라’고 말하는 세상이 아니었다.

일본사람이 일본사람이라는 까닭 만으로,
백인이 백인이라는 까닭 만으로
독일사람이 독일사람이라는 까닭 만으로
비장애인이 비장애인이라는 까닭 만으로
나이 든 이가 나이 들었다는 까닭 만으로
남자가 남자라는 까닭 만으로…

정당과 소속된 선출직의 잘못으로 보궐선거를 하게 될 때 그 비용과 후보를 내는 것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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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음 서울시장, 부산시장 자리채움선거[보궐선거]를 두고 말이 많아 저도 평소 생각을 보태 봅니다.
저 역시 어떤 개인이나 정당의 ‘잘못’으로 자리채움선거를 하게 되면 그 정당이 후보를 내지 않거나 선거비용의 많은 부분을 그 정당이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사실 그렇게 본다면 곧 올 서울시장 채움선거나 부산시장 채움선거 이전에 탄핵으로 쫓겨난 나라마름을 채우는 선거에서 그 정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어야 한다는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고, 무엇보다도 그런 과정을 법으로 만들어 두지 않았으므로, 지금이라도 법으로 정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굳이 법이 아니더라도 미리 희생을 하여 국민들에게 믿음을 산다는 뜻으로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이 다음 채움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것도 썩 좋은 수라고는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다 해서 모든 정치 권리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얘기하는 국민이 선택할 권리를 완전히 빼앗는 것도 아닌 수도 남아 있습니다.
바로 연합후보를 내거나 다른 당을 지지해 줌으로써 에둘러 정치 권리를 부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민주당으로써는 적잖은 희생을 하면서도 국민의 믿음도 사고 정치에서 힘도 쓰고 상당한 이득을 누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전에 이러한 과정들이 법으로 정해지면 좋겠다는 것은, 그 기준이나 원칙 같은 것이 있어야 하겠기에 그렇습니다.
보기를 들어, 옛날 오세훈 옛 서울시장은 대단히 큰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울시장을 물러났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 정당이 굳이 책임을 져야 할 까닭이 없을 것입니다.(즉 다음 채움선거에 후보를 내도 된다고 봅니다.)
부산시장 채움선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서울시장 채움선거는 아직 시간도 남아있고 법으로 죄가 있고 없음이 결정난 것이 아니므로 지금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요약
1. 정당이나 정당 소속 개인이 (확실히!)잘못해서 자리채움선거를 해야 할 때 그 정당은 후보를 내지 않거나 선거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혹은 둘 다)
2. 지금은 비록 그런 것이 법으로 정해진 바가 없지만, 민주당이 솔선수범하고 희생하여 그런 방안을 실천한다면 본보기도 될 뿐더러 국민들에게 믿음도 살 수 있을 것이다.(아울러 민주당이 모든 정치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얻는 수도 있다.)
3. 서울시장 채움선거의 경우는 아직 죄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법에서 죄를 확정하지 않았으므로 지금 얘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세상 일을 균형있게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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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을 균형있게 보려면…! (한자말투로는 ‘균형있는 시사 논점을 위하여’)

저 역시 지지하는 정치 흐름이 있고, 가지고 있는 시사 논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되도록이면 좀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위하여 쓰는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혹 다른 분들도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가지고 계시면 나누어 주시면 좋겠네요. ^^)

사실 언론이 아무리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설령 기계가 한다 해도 세상일에 논점, 시각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세상 일에 논점, 시각이 없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마치 한 물건이 빨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파랑이기도 하고 또 동시에 노랑이기도 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그 언론이 생겨나고 자라난 배경까지 살핀다면 그 격차는 무척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언론마다 같은 일을 가지고도 아주 다른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어느 정도는 당연하다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거의 소설이나 희망사항, 개인 감정 심지어 주술을 ‘기사’라는 이름으로 덧씌워 내놓기도 하니 문제입니다만…
저 역시 곧잘 보는 언론이 있고 하지만, 그래도 되도록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자 쓰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되도록)’모든 언론을 쭉 훑어보는 것’입니다.
무슨 그런 김 빠지는 소리냐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거의 모든 언론을, 적어도 제목 만이라도 쭉 훑어 보다보면 전체적인 흐름도 알 수 있고 어느 언론사가 쓰는 논리 전개 수법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떤 분야 기사는 믿을 만 하지만 어떤 분야에는 사실보다는 진영 논리 혹은 억지나 소설 쓰기가 더 강하더라는 것도 생깁니다.
그러고 나서 그 가운데 좀 더 깊이 알고 싶거나 제목 만으로는 내용이 좀 의심스럽거나(예, 그렇습니다. 요즘 제목으로 낚시질하는 언론들이 꽤 있습니다. 삼류 언론만 그런게 아니라 주류 언론 가운데서도 그런 데가 꽤 많습니다.) 관심이 가는 글은 본문까지 살펴 봅니다.
또 이렇게 거의 모든 언론을 훝어보다 보면, 굳이 정치나 세상사에 관심이 되게 많아서가 아니라 어떤 일을 어떻게 볼 지에 대한 공부도 되는 것 같습니다.(아마도 이 지점이 학생들에게 신문이나 언론을 읽게 해야 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굳이 언론이 아니더라도 온갖 분야의 다양한,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보다 보면 세상에 대한 시각이 조금은 더 넓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거의 모든 언론을 다 찾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쓰는 손 쉬운 방법이,

1. “텔레그램”의 ‘주요 뉴스’ 채널 받아 보기

https://t.me/mainnews ( https://t.me/s/mainnews 으로 들어가시면 웹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즐겨찾기 해 두시면 여느 웹페이지처럼 언제든지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다행히 “텔레그램”은 쓰기에 따라 장점이 참 많은데(‘메신저’로써는 쓰는 이가 많지 않아 좀 그렇습니다만) 특히 ‘채널’ 기능은 마치 게시판처럼 쓸 수도 있고 메신저 앱이 없어도 웹에서도 볼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아 저는 주로 이런 쓰임새로 쓰고 있습니다.(채널의 경우 주소 사이에 ‘/s/’를 넣으면 앱이 없이도 웹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수가 좋은 점은,

  1. 같은 일을 서로 견줘 볼 수 있어서 좋다.
    한 가지 일을 두고 언론사마다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왜곡하는지, 혹은 언론마다 다 밝히지 않은 사실 관계를 견줘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2. 언론사마다 논조를 견줘 볼 수 있다.
    한 가지 일을 두고도 아주 다른 방향의 기사가 나오기도 하고, 언론에 따라 어떤 성격과 논조로 푸는지를 살필 수도 있습니다.

2. 안드로이드폰에 있는 ‘구글(Google)’에서 뉴스 보기

많은 분들이 쓰고 있는 안드로이드폰(가지고 계신 폰이 ‘아이폰’이 아니라면 거의 ‘안드로이드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에 ‘구글(Google)’이라는 앱이 있는데(아마도 영어로만 되어 있을 겁니다.) 그 앱을 열면 여러 분야 소식을 모아서 보여 줍니다.
안드로이드 폰이 아니거나 PC에서라도 https://news.google.com/ 으로 들어가시면 더 많은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일반 시사 기사 말고 과학이나 IT, 건강 관련 기사에도 관심이 있어 이걸 보는 편인데, 관심 없는 분야는 설정에서 뺄 수도 있어 나름 괜찮습니다.(물론 내 관심도를 기계가 판단해서 보여주는 것이라 관심없는 기사가 가끔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 밖에 이른바 포털사이트에서 보여주는 뉴스 서비스가 있는데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포털사이트의 성향에서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 저는 되도록 쓰지는 않습니다.(물론 자주 가는 데가 있다보니 가끔 눌러 보긴 합니다만, 그런 꼴 보기 싫어서 첫화면은 그냥 깨끗한 ‘구글’ 씁니다…^^)
이렇게 보다보면 좀 심하게 편향되거나, 좀 심하게 소설을 쓰거나, 좀 심하게 일기 혹은 기도문을 쓰는 언론사들도 눈에 띕니다.

사실 세상 일이란 게, 언론에서는 여러가지 분석과 예상을 하지만 그 모든 게 다 맞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나고 나면 그냥 헛소리, 그냥 쓰레기인 기사들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일에 대한 여러 언론의 분석을 모아서 비교해 주는 언론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지나고 나면 그 가운데 일부만 맞았다는 게 드러나겠지요. 아니면 다 틀렸거나… ^^)

여튼, 다들 주관을 가지고 있다 보니 생각이 똑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되도록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도록 애쓰고 또 여러 얘기들을 듣다 보면 좀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할라 치면 적어도 폭넓게 아우르는 시각이나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알아야 얘기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좁은 시각, 좁은 생각만 가지고서는 발전 없는 싸움질 밖에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To see current affairs in a balanced way…!

세상일을 균형있게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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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을 균형있게 보려면…! (들온말투로는 ‘균형있는 시사 논점을 위하여)

저 역시 지지하는 정치 흐름이 있고 가지고 있는 시사 논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되도록이면 좀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위하여 쓰는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혹 다른 분들도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가지고 계시면 나누어 주시면 좋겠네요. ^^)

사실 언론이 아무리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설령 기계가 한다 해도 세상일에 논점, 시각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 언론이 생겨나고 자라난 배경까지 살핀다면 그 격차는 무척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언론마다 같은 일을 가지고도 아주 다른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어느 정도는 당연하다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거의 소설이나 희망사항, 개인 감정 심지어 주술을 ‘기사’라는 이름으로 덧씌워 내놓기도 하니 문제입니다만…
저 역시 곧잘 보는 언론이 있지만, 그래도 되도록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자 쓰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되도록)’모든 언론을 쭉 훑어보는 것‘입니다.
무슨 그런 김 빠지는 소리냐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거의 모든 언론을, 적어도 제목 만이라도 쭉 훑어 보다보면 전체적인 흐름도 알 수 있고 어느 언론사가 쓰는 논리 전개 수법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목에서 좀더 색다른 관점이 보이거나 흥미가 생기는 기사는 본문까지 살핍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떤 분야 기사는 믿을 만 하지만 어떤 분야에는 사실보다는 진영 논리나 고정된 관점이 더 강하더라는 것도 보입니다.
또 이렇게 거의 모든 언론을 훝어보다 보면, 굳이 정치나 세상사에 관심이 되게 많아서가 아니라 어떤 일을 어떻게 볼 지에 대한 공부도 되는 것 같습니다.(아마도 이 지점이 학생들에게 신문이나 언론을 읽게 해야 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굳이 언론이 아니더라도 온갖 분야의 다양한,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보다 보면 세상에 대한 시각이 조금은 더 넓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거의 모든 언론을 다 찾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쓰는 손 쉬운 방법이,

  1. 텔레그램”의 ‘주요 뉴스’ 채널 받아 보기
    https://t.me/s/mainnews (웹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텔레그램”은 쓰기에 따라 장점이 참 많은데(‘메신저’로써는 쓰는 이가 많지 않아 좀 그렇습니다만) 특히 ‘채널’ 기능은 마치 게시판처럼 쓸 수도 있고 메신저 앱이 없어도 웹에서도 볼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아 저는 주로 이런 쓰임새로 쓰고 있습니다.(채널의 경우 주소 사이에 ‘/s/’를 넣으면 앱이 없이도 웹에서 볼 수 있습니다.)
  2. 안드로이드폰에 있는 ‘구글(Google)’에서 뉴스 보기
    많은 분들이 쓰고 있는 안드로이드폰(가지고 계신 폰이 ‘아이폰’이 아니라면 거의 ‘안드로이드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에 ‘구글(Google)’이라는 앱이 있는데(아마도 영어로 ‘Google’라고만 되어 있을 겁니다.) 그 앱을 열면 여러 분야 소식을 모아서 보여 줍니다.
    저는 일반 시사 기사 말고 과학이나 IT, 건강 관련 기사에도 관심이 있어 이걸 보는 편인데, 관심 없는 분야는 설정에서 뺄 수도 있어 나름 괜찮습니다.(물론 내 관심도를 기계가 판단해서 보여주는 것이라 관심없는 기사가 가끔 보이기도 합니다만…)
    이 기능을 미리보기하고 싶으시면 https://news.google.com/ 에 가시면 더 많은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이른바 포털사이트에서 보여주는 뉴스 서비스가 있는데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포털사이트의 성향에서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 저는 되도록 쓰지는 않습니다.(물론 자주 가는 데가 있다보니 가끔 눌러 보긴 합니다만, 그런 꼴 보기 싫어 첫화면이 깨끗한 ‘구글’ 씁니다…^^)
이렇게 보다보면 좀 심하게 편향되거나, 좀 심하게 소설을 쓰거나, 좀 심하게 일기 혹은 축원물을 쓰는 언론사들도 눈에 띕니다.

사실 세상 일이란 게, 언론에서는 여러가지 분석과 예상을 하지만 그 모든 게 다 맞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나고 나면 그냥 헛소리, 그냥 쓰레기인 기사들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일에 대한 여러 언론의 분석을 모아서 비교, 분석해 주는 언론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지나고 나면 그 가운데 일부만 맞았다는 게 드러나겠지요. 아니면 다 틀렸거나… ^^)

여튼, 다들 주관을 가지고 있다 보니 생각이 똑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되도록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도록 애쓰고 또 여러 얘기들을 듣다 보면 좀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할라 치면 적어도 폭넓게 아우르는 시각이나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알아야 얘기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좁은 시각, 좁은 생각만 가지고서는 발전 없는 싸움질 밖에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풀뿌리민주주의 혹은 지방자치, 주민자치, 참여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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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꾼들이 민원에만 매달리지 않게 하고 정책을 연구해야 한다는 지난 글에 이어…

사실 저는 요즘 이른바 #풀뿌리민주주의, #지방자치, #주민자치 이런 데에 관심이 좀 있습니다.
아마도 한때 풀뿌리민주주의, 지방자치 이런 게 바람을 타던 때가 있었지요?
그 성과가 일부는 기존 정치 지형에 영향도 주었을 테지만 어쨋든 우리가 살갗으로 느끼는 바닥에서는 그냥 옛날 얘기가 되어 버린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풀뿌리민주주의’, ‘지방자치’의 노력을 평가함에도 그것이 지금의 지방의회 같은 걸로 성과가 났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테고, 그건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테지요…
여튼,…
아직도 우리 삶 곳곳에 민주스럽지 못한 혹은 형식만 민주주의 허울을 쓴 모습들도 많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인 듯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가장 큰 지점이 바로 투표를 통한 ‘다수결의 절대 신봉’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나름 ‘풀뿌리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지금에서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이 단지 형식적인, 제도적인 모습으로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삶에서 우리 정신을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혹 이런 쪽에 관심 있는 분 계실까요?
아무래도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 생각과 견주면서 공부하면 공부가 더 잘 되겠지요? ^^
‘풀뿌리민주주의’ 혹은 ‘지방자치’, ‘주민자치’, ‘참여민주주의’ 이런 거에 관심 있으신 분들 계실까요? ^^;;

의회 일꾼들이 정책을 연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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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로 가끔 군수나 국회의원, 혹은 지방의회(기초의회, 광역의회) 의원을 볼 때가 있는데, 그 분들을 볼 때마다 ‘과연 이렇게나 여러 단계의 대변자들이 필요할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다들 역할이 다르고 단계가 달라 필요에 따라(?) 만든 체계이기는 하겠으나, 사실 그들을 대하는 우리(주민, 국민)들의 자세나 또 그들의 자세를 보면 그런 회의가 들곤 합니다.
지자체장이나 의원들이 주민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나오는 얘기는 거의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는 민원이고, 또 그들 또한 주민들에게 하는 얘기는 이것 해 드리겠습니다, 저것 만들었습니다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의회에 일꾼을 뽑아 보내고 그 밑에 그 일을 돕는 사람들까지 둘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일반 주민들이 할 수 없는 연구를 해서 정책을 만들어 달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런데 맨날 민원성 의견만 내니 그들 또한 만나서 하는 얘기는 거의 민원성 얘기들 뿐입니다.
지방의원을 만나도 그렇고 국회의원을 만나도 그렇고 기초단체장을 만나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우리 지역에서도 군수나 국회의원을 만나서 민원을 얘기하면 그나마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은데 정책을 얘기해 보면 시큰둥하고 별 반응이 적습니다. 가끔은 ‘민원’을 지렛대 삼아 ‘정책’을 얘기하면 자꾸 ‘민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민원’ 얘기만 합니다. ‘다 시끄럽고, 그래서 뭘 해 줄까?’하는 느낌입니다.

대체 민원을 해결하는 데에 왜 이렇게 많은 단계의 창구가 필요할까요?
솔직히 좀 큰 물(?)에서 노는 자치단체장 후보나 국회의원 후보나 그럴싸한 정책을 내놓고 표를 달라고 하지, 그 밖의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 후보들은 정책은 정책자료집에만 있을 뿐 강조하는 건 주로 뭘 만들겠습니다, 뭘 유치하겠습니다만 힘을 줄 뿐입니다.
어쩌면 이건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 지방자치가 우리가 아래서부터 일군 것이라기 보다는 위에서 이식된 것이라는 것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제대로 ‘민주주의’를 누려본 역사가 짧아서가 아닐까요???

이걸 바꾸어야 합니다.
지자체장들, 의원들도 이걸 바꾸어야 하고, 국민들, 주민들도 이걸 바꾸어야 합니다.
물론 ‘민원’이란 게 정책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민원’이 중심이 아니라 ‘정책’이 중심이요 핵심이고 그에 따라 ‘민원’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지자체장들도 정책을 ‘연구’해서 시행을 해야 하고, 의원들도 ‘정책’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런 변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제 죽을 줄 모르고 약을 뿌려대는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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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 ‘쓱’ 닦으니 노란 가루 가득…동해안 송홧가루 폭탄>
또 얼마전에는 우리 군 민원게시판에 ‘각다구가 많으니 방제해 달라’는 민원이 올라왔고 방제하겠다는 답변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고 하면, 송화가루가 해로운 물질입니까? 각다구가 해로운 벌레인가요?
송화가루가 좀 많이 날리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아주 가끔 송화가루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송화가루가 그이상 해로운 물질은 아닙니다.(가끔 좀더 많은 사람에게 알러지를 일으키는 나무 종류가 있는데, 요즘은 그런 것은 가로수 같은 걸로 결코 심지 않습니다.)
봄이 되면 하루살이나 각다구들이 많이 보이고 모여서 짝짓기 비행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을은 결코 사람에게 해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벌레들은 모기 같은 것과는 다르게 생태계에 아주 유익한 작용을 하는 익충(이로운 벌레)에 해당합니다.
우리 삶이 도대체 얼마나 더 편하고 싶길래, 봄에 송화가루 날리는 것을 투정하고 별 해도 주지 않는 각다구까지 죽여 없애야 하는 걸까?

하나 더 있습니다.
<코로나19 막는다며…‘독성 소독제’로 드론 방역>
이건 뭔 얘긴가 하면, 경남 하동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방한다며 드론으로 벚꽃 군락지에 (독해서 뿌리지는 말고 닦는 데만 쓰라고 준)독성 소독약을 뿌렸다는 것인데 사람들을 통제하지도 않고 그냥 뿌렸다고 하네요.

그렇게 귀찮다고, 보기 싫다고, 불편하다고 약을 뿌리고 그런 것들을 없애고 나면 꽃가루 받이는 누가 할 것이며 그 약들은 결국 누가 먹고 마시게 될까요?
물론 이렇게 바로 얘기하면 누구나 아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약을 치고 모든 것을 죽여 버릴 듯이 하는 것은 왜 일까요?

황운철 기장군의회 의장이 단식하는 것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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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있었던 얘기.
어떤 멕시코 사람이 한국 친구에게, 한국의 (힘든 회사 생활로 인한)직장인 자살률이 높은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희들은 상사가 너희를 괴롭히는데 왜 너희들이 죽냐? 상사를 죽여야지…” ^^

(그냥 뭉뚱그려 말해서)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어떤 뜻을 표현하는 데에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서양 사고로는 무엇인가 주장하고자 할 때 맞서 싸우지만 동양 사고에서는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해쳐서 그 목적을 이루려고도 합니다.(어느 것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사고, 사상적인 뿌리가 다를 뿐입니다.)
흔히 ‘단식’이란 것이 여러가지 까닭이 있지만 정치사회적인 단식은 바로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해치면서 제 주장을 펴는 것입니다.
요즘 가끔 하는 시위 형태인 삼보일배는 스스로 몸을 괴롭히며 자신을 낮추어 제 뜻을 드러내는 시위입니다.(물론 다들 아시다시피 제 몸과 마음을 온전히 신께 바치는 뜻으로 종교에서 왔다고들 합니다.)
어떤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겪을 때 ‘자살’하는 것에 대해 서양(의 사고, 사상)에서는 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동양에서는 죄가 없음을 가장 격렬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봐 줍니다.(대체로 그렇다는 것이지 문화적, 종교적 등 여러가지로 다르기는 합니다.)
서양 종교에서는 자살을 매우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동양 종교에서는 어떤 점에서 아주 높고 숭고한 행위로 보기도 합니다.

동양적인 표현 형태는 구실이야 어떻든간에 스스로를 낮추고 괴롭히고 죽이는 모양새로, 서양적 사고에서 보면 무척 엉터리같고 바보 같은 짓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한편으로는 생명존중사상하고도 맞닿아 있으며, (서양에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내가 짊어진다는 예수와 비슷하게)자신을 비우는 종교적 사상하고도 맞닿아 있습니다. 바로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그 모든 업보를 스스로가 짊어진다는 것이지요.
또한 주장을 관철할 만한 건덕지를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기장군의회 의장인 ‘황운철’ 님께서 단식 중이라 합니다.
내 몸, 내 목숨 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제 몽뚬아리를 바치고 제 목숨을 바쳐 뭔가 말씀하시고자 하는데 못 들어 줄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지요…
그리고 그렇게 몸과 목숨을 바쳐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데 주장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나중 문제이고 한번 찾아가서 손 잡아 주고 얘기 한번 들어주는 것이 사람으로서 예의 아닐까요?
우리가 정치를 하고 행정에 몸 담고 이런저런 주장을 맞서 다투는 것은 다 살자고 하는 일입니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이지요.
사람이 있고 나서야 제 주장도 있는 것이고 정치, 행정도 있는 것입니다.

부디 몸 더 상하시기 전에 찾아뵙고 손 잡아드리고 얘기 한번 나누시길 그 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 공무원과 행정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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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떤 일로 (시군구 단위)지자체에 갔다 왔는데, 한꺼번에 고구마 100개 먹은 듯한 답답함…

가장 먼저 종종 보던 건물이지만 꼭 그렇게 공무원스럽게 지어야 했을까… 이왕이면 좀더 예쁘거나 아기자기 하거나 좀 아름답게 지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답답함… (그렇다고 호화 청사를 지으라는 얘기는 아님)
들어가서 담당자를 잠깐 기다리며 보니 젊은(어리다고 해야 할) 직원들이 꽤 보이더라는 거~
나름 어떤 사람은 ‘꿈의 직장’이라는 공무원이면 한번 되고 나면 나가기 싫어할 것 같고 그래서 왠지 나이 든 사람들이 자리를 꿰어 차고 앉았을 것 같은데 마치 알바 같아 보이는 젊은(어린?) 직원들이 많아서 좀 놀랐다는 건데,…
더 놀라운 건, 아마도 다들 직급이 아래다 보니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자리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자리에 앉아서는 쓸데없는 짓들을 하고 있더라는 답답함…(참말로 시간이나 때우는 편의점 알바처럼 보였음… ㅡ.ㅡ)
뭐 그렇다고 게임을 하거나 하는 딴짓을 하는 건 아닌데…(그 가운데는 노래를 듣는지 이어폰을 끼고 있거나 스마트폰으로 잠깐씩 딴짓을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더라마는…) 여튼 괜시리 이 폴더 저 폴더 열었다 닫았다 이 화면 저 화면 돌아다니고…
그럴 거면 업무가 없으면 차라리 자리에서 잠깐 벗어나서 쉴 수 있게 해 주면 업무에도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더 욕심을 낸다면, 뭔가 제 담당분야 공부를 하게 한다던지, 그래서 무슨 좋은 제안서를 꾸며 본다던지 하고 그런 것을 업무 능력에 반영을 하면 훨~씬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이지 않을까 하는 답답함…
나름 ‘꿈의 직장’이라는 공무원이 될 정도면 그래도 학교 때 공부도 좀 하던 이들일 테고, 아주 멍청한 애들도 아니었을 텐데, 기껏 ‘꿈의 직장’에 들어와서 저렇게 눈치나 보면서 재능을 죽여야 하나 하는 생각에 답답….
저러니 나중에 직급이 높아져서는 창의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고 그저 서류나 뒤적이고 규정이나 찾는 얼빠진 공무원이 될 수 밖에 더 있을까 하는 답답함…
게다가, 젠장…!
내가 그 부서를 찾아간 게 1년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담당자가 바뀌었더라는 거~
게다가 더 젊은 사람으로…
대체 저렇게 자리를 자꾸 바꾸어서는 업무는 언제 익히고 전문성은 언제 찾냐고~~~! (이미 이 때쯤 고구마 50개~ ㅡ.ㅡ)

내가 생각하던 업무 상 부서를 두어 군데 돌아 다녔는데,…(아시다시피 같은 일임에도 일에 따라 부서가 다 다름… ㅡ.ㅡ)
나중에 현장에 가서 좀더 얘기를 해 보자는 쪽은 그나마 결론이 좋은 편이고, 한 마디로 하면 딱히 된다는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해 주겠다는 것도 아닌 ‘노력해 보겠습니다’ 수준… ㅡ.ㅡ (이건 맨날 똑 같음. 서류나 인터넷으로 민원을 넣어도 비슷한 결론의 답…)
사실 현장에 가서 좀더 얘기를 해 보자는 쪽도 ‘그나마’ 그렇다는 거지, 그 일로 이미 한 차례 찾아가서 얘기 했는데, 그때 이후로는 뭐 하다가 이제서야 그 대답?(‘담당자가 바뀌어서’라는 상투적인 대답, 핑계, 핑계… ㅡ.ㅡ)
계획을 세울 때 이런 저런 의견도 듣고 더 나은 대안도 찾고 문제점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지, 계획 실행단계에서 내 민원을 듣고 다시 살피는 것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건가? 이 나라(혹은 지자체) 행정이 그렇게나 주먹구구던가?
똑 부러지는 대답을 못 해 주는 것에 대해서 자기들 ‘입장’을 내세우며 핑계, 책임 회피~(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냐고! 윗대가리한테 얘기해서 고쳐야지~)

아마도 그 사람들도 사석에서 개인적으로 만나면 대부분 착하고, 나름 식견 있고 나름 멍청이들은 아닐텐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러면서 다시 그 어리던 직원을 보니 답답, 우울, 한심, 불쌍… ㅜ.ㅜ
아마 그들도 어쩌다 스스로를 돌아보다 보면 자괴감이 들겠지…? ㅜ.ㅜ

도대체 공무원, 공무원 사회, 이 나라 행정 시스템이 왜 이 모양이 되었냐고~! ㅜ.ㅜ
그러고도 이 나라가 안 망하고, 그 자리가 없어지지 않고 유지가 되니 나름 ‘꿈의 직장’은 맞는 듯… ㅡ.ㅡ

비교적 쉽게 쓸 수 있는 자동화 장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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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오는 새로운 기술들은 개념이 낯선 것도 많고 혹은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님에도 어쨋든 새로운 것이거나 혹은 뭔가 대단한 것인 양 보이는 것들이 많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나 새로운 것을 어려워 하는 분들, 그리고 그런 기술에서 소외되어 있던 분들은 막상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막상 그것이 그리 어렵거나 다루기 어려운 것이 아님에도… 그리고 어쩌면 그런 기술이 정말 필요한 분들은 그런 분들 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를 적어 볼 까 합니다.(간단한 장치나 기기로 비교적 손쉽게 기존 시설에 엮어서 함께 쓸 수 있는 것들을 모을 것이고, 아예 그런 쓰임새로 갖춰져 나온 기기, 보기를 들어 사물인터넷 냉장고 같은 것은 뺍니다.)
스스로 쓰셔도 되지만 주변에 이런 것이 필요할 만한 분들이 계시면 조금 공부해서 설치해 드리면 아마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스 차단기

사실 이건 딱히 새로운 기술도 아니고 그냥 장치일 뿐인데 정말 필요한 분들이 많음에도 뜻밖에도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신 듯하여 알려 드립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쓰는 가스 꼭지(콕;cock)에 달아서 쓰는 것인데, 가스불 위에 뭘 올려 두고 깜빡 잊어버렸다가 놀란 경험들 많으실 겁니다. 요즘은 나이 상관없이 다들 바쁘다 보니 젊은 분들도 그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요즘은 건축 허가 낼 때 불을 막는 여러가지 장치를 달게 하지만 그런 게 없거나 혹은 그런 게 있다고 해도 불이 나고 나서 조치를 하는 것보다는 불이 안 나도록 조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아울러 요즘은 왠만한 가스렌지에는 감지 장치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런 것이 있다 해도 안전장치를 하나 더 한다 생각하셔도 되고 옛날 가스렌지 혹은 싼 가스렌지를 쓰시는 분들께는 꽤 쓸모 있을 것입니다.
다만, 주로 시간에 따라 가스를 스스로 잠궈 버리는 장치이기 때문에 일부러 오래 끓이는 때에는 좀 성가실 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가스 꼭지 모양이나 위치에 따라 달 수 없는 제품도 있으니 잘 확인하셔야 합니다.
‘가스 차단기’에 대한 더 자세한 것은 구글질을 해 보시면 많이 나옵니다. – 구글에서 ‘가스 차단기’ 찾아 보기

보일러를 원격제어하기

요즘은 ‘사물인터넷'(IoT)이라는 것에 대해 말이 많은데 정작 실생활에서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아 오히려 낯선 개념처럼 느끼기 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물인터넷'(IoT) 개념을 설명하자면 좀 복잡하겠지만 쉽게 말해서 어떤 물건을 인터넷을 연결해서 그 물건에 대해 정보를 정보값을 얻거나 조정하는 거라 보시면 됩니다.(개념이 낯설면 이조차도 어렵게 느끼겠네요… ㅡ.ㅡ)
여튼, 요즘은 ‘사물인터넷’으로 쓸 수 있도록 나온 보일러도 꽤 있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보일러를 바꿀 수도 없고 하니 되도록 간단한(?) 장치를 달아서 원격제어가 되는 보일러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분이 구형 보일러를 IoT 보일러로 만들자! – 경동나비엔, 귀뚜라미, 린나이, 대성쎌틱이라는 글에 잘 적어 놓았습니다.(혹시 이것마저도 어려워서 도움말이 필요하다 하시면 이 글 아래나 혹은 제 텔레그램으로 쪽지 주시면 되도록 상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깨몽 텔레그램 – 굳이 텔레그램을 깔지 않고도 전화번호 인증 만으로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보일러에서 ‘사물인터넷’은 제대로 된 ‘사물인터넷’이 아니라 겨우 ‘원격 제어’ 정도 밖에는 못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앞으로는 좋아지겠지요만… ㅡ.ㅡ)

집 안팎을 살필 수 있는 IP 웹캠 달기

사실 ‘IP 웹캠’은 참으로 말이 많은데, 이 또한 자극적이고 뻥이 심한 언론 기사에 너무 휘둘리지 마시고 잘 쓰면 무척 편리합니다.(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초기 비밀번호는 반드시 바꾸시기 바랍니다.)
‘IP 웹캠’은 흔히 ‘와이파이 웹캠’이라고도 부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CCTV와 비슷한데 이것을 집에서 쓰는 인터넷에 연결해서 쓴다고 보면 됩니다.(무선 와이파이로 연결할 수도 있고 네트워크 선을 통해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복잡한 장치가 없다 보니 CCTV보다도 덩치는 훨씬 작습니다.)
이것을 달아 놓으면 흔히 쓰는 것처럼 방범 목적이나 갓난 아이 방이나 실내 반려동물을 지켜보는 쓰임새로 쓸 수도 있고, 홀로 떨어져 사시는 어르신들을 지켜 드리는 쓰임새로 쓸 수도 있습니다.(가스불은 잘 잠그고 다니시는지 같은…) 물론 이 때는 당연히 그런게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쓰임새에 따라 부엌이나 거실 혹은 마당이나 출입문 같은 데만 달아야 할 것입니다.
쓰기에 따라서는 양방향 대화 쓰임새로도 쓸 수가 있습니다.(듣기만 하고 말할 수는 없는 기종도 있으니 확인…)

스마트 초인종

스마트 초인종을 달고 와이파이 같은 것으로 연결하면 집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집 밖에 나가서도 문 밖에 온 사람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집에 없을 때도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스마트 플러그

전기를 꽂는 플러그를 와이파이 같은 것과 엮어서 밖에서도 조종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대기전력을 줄이는 쓰임새로 쓰시는 분도 꽤 있고,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 마치 집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전원을 넣었다 끊었다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것으로 ‘타이머 플러그’가 있는데 이건 미리 정해진 시간에만 전원을 넣었다 끊었다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