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알림톡의 불법성에 대하여 – 돈벌이도 상도의에 맞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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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새로 폰을 하나 만들었고 예전부터 만들어 놓고 쓰지 않던,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카카오톡이란 걸 가끔 써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받았어야 할 문자가 안 오는 것 같은 일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일을 확인하고는 통신사에 따지기도 했었다.(통신사에서 알려준 방법들은 이미 내가 알고 있거나 살펴 본 것들 뿐이었고, 서로 난감해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그 문자들이 문자메시지 대신 카카오톡 알림톡으로 간 사실을 알았다.(정확히 얘기하자면 문자메시지가 알림톡으로 간 것이 아니라 문자메시지로 와야 할 내용이 카카오톡에 그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문자메시지 대신 알림톡으로만 바로 갔었던 것.)
그래서 카카오 쪽에, 약관에 그런-내 동의도 없이 내 정보를 다른 기업 쪽에 넘기거나 동의없이 그런 알림을 보낼 수 있는 근거- 내용이 있는지, 혹시라도 내가 알림톡 수신을 동의한 이력이 있는지를 물었으나 카카오 쪽에서는 ‘정보성 안내에 대해서는 사용자 동의없이 보낼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만 얘기했고 그래서 합법이며 알림톡 수신을 거부할 수 있는 메뉴는 따로 없으며 알림톡을 받고 싶지 않으면 알림톡에서 개별차단을 하거나 카카오톡을 아예 탈퇴하는 수도 있다는 아주 고마운(?) 답변을 받았다.(하지만 개별 알림톡을 차단하려 해도 적어도 한번은 알림톡을 받아야 그 창에서 차단을 할 수가 있다. 이 무슨… 메비우스 띠냐? ㅡ.ㅡ;;)
그래서 알림톡의 문제에 대해서 혹은 알림톡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찾아 보았으나 뜻밖에도 나만 그런 불편과 문제를 겪는지 그런 글을 찾을 수가 없었다.(와~ 대단들하다… ㅡ.ㅡ 편리하기만 하면 과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 건가???)
그러다 어쩌다 보게 된 글이 ‘카카오 알림톡 유감‘이란 글이었는데, 내가 느끼던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카카오의 행태와 알림톡의 문제에 대해 꽤 깊이있게 쓴 글이라 생각되어 그 글을 뼈대로 해서 내 생각을 적어 보려 한다.

1. 카카오는 저희들 장사에 그 비용은 사용자에게 물리고 있다.

사람들은 데이터를 쓸 때마다 돈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데이터에 대해 무신경하나, 그것이 무제한이건 뭐건 간에 내가 쓰는 데이터에 대해서는 돈을 내고 쓰는 것이다.(반면 문자메시지는 보내는 사람만 돈을 내지 받는 사람은 따로 돈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카카오톡 알림톡은 받을 때도 내 데이터를 쓰는 것이므로 내게 비용을 떠넘기는 꼴이 된다. 물론 어떤 서비스라도 얼마 쯤의 돈을 내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알림톡의 경우에는 카카오 쪽에서 수익을 얻는다. 쉽게 말해, 내게 돈을 물리고 수익은 카카오가 먹는다.

2. 카카오는 내 정보를 바탕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정보성 글에 대해서는 사용자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어느 법에 근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알기로 저런 법 규정이 생긴 것은 옛날 스팸 문자가 엄청 늘어날 때 광고가 아닌 정보성 글에 대해서는 따로 미리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보낼 수 있고 그 글에 수신거부 등의 방법을 담도록 한 것으로 알고 있다.(물론 그 수신거부 방법조차 믿을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때 쓰는 사용자 정보는 불법적으로 얻어서는 안 되며 그래서 개인 정보의 출처는 ‘전화번호부에서 뽑았다’던지 ‘무작위로 돌렸다’는 식으로 둘러댄 것으로 안다.(재주 좋네? 무작위로 돌렸는데 딱딱 들어맞던?)
그런데 카카오에서 하는 알림톡은 알림톡을 보내는 기업이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카카오 쪽으로부터 넘겨받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알림톡을 운영하면서 수익까지 얻으므로, 내 정보를 불법적으로 팔아 넘겼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어떤 식으로건 교묘하게 법규정에서 근거를 찾는다 하더라도…)
게다가 일괄적인 수신거부 방법도 없다.

3. 가장 큰 문제는 사용자 동의없이 알림톡을 보내고 그것을 철회할 수가 없다.

카카오톡 알림톡은 사전 동의없이 보내고 있고 카카오 쪽으로부터도 동의를 받았다는 주장은 듣지 못했으며 법에 따라 보냈다고만 안내 받았다.
그 절차에 대해서는 법의 교묘히 해석해서 근거를 찾는다 하더라도 그 불법성 혹은 문제점이 이미 지적된 바 있다. – 카카오 ‘알림톡’ 처음 받을 때 동의여부 결정
법 규정을 조금 더 살펴봐야겠지만, 법 해석이란 것이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내가 보기에는 카카오 쪽에서 아주 교묘하게 법을 이용해 먹고 있는 것으로 본다.
게다가 따로 동의 절차나 철회 절차도 없다! 뭐 이런 깡패 같은 짓거리가 있는가!

4. 현실적인 문제로는, 문자로 받아야 할 것이 알림톡으로 가 버린다.

나는 카카오 계정을 만들어 주기는 했어도 카카오톡을 그리 쓰는 편이라 아니라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가끔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 카카오톡을 쓸 때가가 있는데 그 즈음(물론 처음에는 그 때가 그 즈음인지를 몰랐다.)에 문자가 잘 안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가끔은 인증문자 같은 것이 아예 안 들어온 걸 확인하고 통신사에 따지기도 하고 그랬다.
통신사에서 알려주는 방법들은 다들 이미 내가 알고 있거나 살펴본 것이라 서로 난감해 하곤 했다.
그러다 나중에 그 문자들이 카카오톡 알림톡으로 들어가 있는 걸 알았다.
(잠깐 풀자면, 정식 인증기관에서 보내는 문자는 문자메시지로 들어오는데 일반 기업 같은 데서 보내는 인증 문자가 안 들어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인증기관에서는 알림톡을 쓰지 않기 때문이었고 알림톡을 쓰는 기업에서 보내는 문자는 내 전화번호가 카카오톡에 등록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문자메시지 대신 알림톡으로 보낸 것이었다.
아울러 나는 카톡을 거의 쓰지도 않고 자주 쓰지도 않는 쓰레기 앱을 내 폰에 깔고 싶지 않아 안 쓰는 폰에 깔아놓고 가끔 써왔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카카오 쪽에 ‘내 동의도 없이 이런 서비스를 강요하는 것이 약관에 있는가? 내가 동의한 이력이 있는가?’고 물었지만 정보성 글에 대해서는 사용자 동의없이 보낼 수 있으며 적법하다, 받기 싫으면 (하나씩)차단하라, 정히 싫으면 카카오톡을 아예 탈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라는 아주 눈물겨운 답변을 받았다.

5. 알림톡을 개별 차단하려 해도 적어도 한번은 알림톡을 받아야만 한다.

대체 동의도 필요없고 철회할 방법도 없는 서비스를 강요하는 것이 말이 되기는 하는걸까? 게다가 차단하고 싶어도 적어도 한번은 알림톡을 받아야 한다. 그 얘기는 알림톡을 안 받기 위해 알림톡을 받아야 하는 모순, 뫼비우스 띠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모든 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제발 상도의는 지켜가며 장사를 했으면 싶다.
카카오가 푼돈에 목마른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ㅡ.ㅡ;;

벗어난 자유, 벗어난 권리 –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건에 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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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모처럼, 오랫만에 ‘나라'(‘국가’ 혹은 사실은 ‘정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흔히 삶과 맞닿아서 ‘국가’를 얘기할 때 그것은 사실 ‘정부’를 얘기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도 실은 실체가 ‘정부’라는 점에서 흔히 하듯 ‘국가'(나라)라고 뭉뚱그리지 않고 ‘정부’라고 콕 집어 얘기하겠습니다.

오래지 않은 옛날에는 정부가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실제로 반인반신(半人半神)인지 반인반수(半人半獸)인지 께서 통치하시던 때에는 그냥 평범한 사람도 말 한번 잘못했다가 안기부 지하실에 끌려가 고문 받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우리 삶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나라마름[대통령]을 욕하고 옛날 같으면 경을 칠 소리를 해도 그다지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시절을 보고 자란 사람으로써 그렇다 보니 이제는 많은 것들이 오히려 지나치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합니다.
아, 물론 아직도 정부에 불만스러운 사람은 많이 있지요.
저만 해도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럽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모든 걸 그냥 정부 탓만 한면 되는 세상이 된 듯도 싶습니다.
내가 못 살아도 정부 탓, 내가 힘들어도 정부 탓, 비가 와도 정부 탓, 바람이 불어도 정부 탓, 정부 탓, 정부 탓, 정부 탓,…(유달리 이런 사회적 경향이 심하게 나타나는 게 어느 쪽 성향의 나라마름[대통령], 정부가 들어서서 그런 것 같은 건 제 기분 탓이겠지요? ㅡ.ㅡ;;)

뭐 하고픈 말도 많고 들고 싶은 보기도 많지만, 글이 길어지니 최근에 저를 화 나게 하는 딱 한 가지만 들어 얘기해 보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 일과 관련된 분을 깔아뭉개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도 저처럼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얼마 앞서 어떤 공무원(어업지도원)이 서해 북단에서 일을 하다가 사라졌다가 북한 땅에서 북한군이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그 과정은 다들 아실테니 줄이고요…)
그 일로 얼마 앞서 문재인 나라마름[대통령]이 이른바 ‘친서’를 가족들에게 보냈는데 그게 또 말썽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따져 보겠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 사람은 공무원이면서 북에 월북한 신분입니다.
어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북한 땅으로 떠밀려 간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북한 땅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 땅에 넘어간 순간 우리 나라 통치 관할에서 떠난 것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구출 혹은 빼내오려 하는 것은 북한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입니다.(북한이 주권국이 아니네 어쩌네 하는 개소리는 집어치우시고요!)
거꾸로 다른 나라 사람이 뜻하지 않게 우리 땅에 들어왔는데 외교 통로를 통하지 않고 제 멋대로 와서 데려가려 하거나 우리 땅에 총을 쏜다면 그건 주권 침해 행위이고 적대행위입니다.(쉽게 말해 전쟁에 준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왜 구조하지 않았냐니요! 왜 지켜보기만 했냐니요!
심지어 그 소리가 이 나라 정치를 책임진다는 정치인, 법을 세운다는 입법기관 의원 아가리에서 나오다니요!!!
아무리 상대 당, 상대 당 쪽 정부를 깎아 내리고 싶다해도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잘못 나간 것이고 정신 나간 헛소리입니다.
그리고 우리 군이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까발려 준 덕분에 북한군은 우리가 감청한다는 걸 알고 통신 체계를 바꿨다고 합니다. 이건 심각한 이적행위입니다.(심지어 감청하는 중에 우리 군이 북한군에게 왜 말을 걸지 않았냐고 따진 그 의원 나부랭이는 한때 해운대기장 지역구였습니다. 개판이네요… ㅡ.ㅡ)
이 즈음에서 영화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미테이션 게임’이란는 영화에서는 적의 암호 체계를 깨고도 그것이 알려질까 숨기는 과정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나 싫어라 하는 적성국을 감청하고 있다가 말을 걸라고요? 아니 이건 꼭 군대 갔다 와야 아는 겁니까? 이건 무식 정도가 아니라 그냥 개념 자체가 없는 겁니다.

아, 물론 비록 우리 관할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우리 국민을 북한군이 처리한 과정에 대해서는 따질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외교적인 차원의 문제고요…
거꾸로 얘기해서 황장엽이 북에서 넘어오고 태영호가 북한에서 넘어왔다고 북한이 그 사람들을 넘겨달라고 하면 우리는 옛소 하고 넘겨 줍니까?
북한이 이러저렇게 처리해 주시오 하면 그대로 따라 줍니까?
이 단순해 빠진 덧셈, 뺄셈을 여기서 또 얘기하려니 짜증이 나네요.

그 다음으로, 문재인 나라마름[대통령]께 무척 실망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그도 우리 국민이고 또 목숨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이치와 또 나라를 대표하는 이로써 그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것은 옛날과는 달라진 제대로 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손뼉을 쳐 드리고 싶습니다만,…
어찌되었건 그는 제 발로 적성국으로 넘어간 사람이고 그렇다면 그게 무슨 큰 칭찬할 일이 아닌데도 굳이 ‘친서’를 보냈어야 하는 것입니까?!!!(태영호가 남한에 와서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김정은이 그 가족에게 축하 친서를 보냈다면 그게 정상입니까? 미친 거지…?)
이 나라에는 눈에 크게 띄지는 않지만 제 의무를 다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가면서도 어렵게 사는 사람도 많고 그 가운데는 가끔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나는 그런 분들께 나라마름[대통령]이 ‘친서’를 보내 위로했다는 얘기를 본 적이 없습니다.(‘친서’를 보냈는데도 안 알려져서 일까요? 아니면 몰래 보내서 일까요?)
그런데 굳이 이번에는 그 가족들에게 친서를 보냈는데, 좀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만 어쨋든 안타까운 일이니 그것까지는 이해를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과 일부 개쓰레기 언론들은 그게 친필-직접 손으로 쓴 글씨-이 아니었다는 둥 하면서 욕을 해 댑니다.
하~~~ 참,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그 분이 나라 구하다가 돌아가셨습니까? 독립운동하다가 돌아가셨습니까? 하다못해 무슨 의로운 일을 하다 돌아가셨습니까???
뭔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한 거라고 거기다 친서를 보내며, 또 그렇게라도 예의를 보여줬으면 적어도 예의를 보여준 그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뭐라 하지 않는 게 또 사람으로써 예의라고 생각합니다.(물론 가족을 잃은 처지로써 뭐라도 하소연을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습니다만,…)
그런데 친필이 아니었다고 비난을 하다니요! 이런 개쓰레기^$%$#^$#^ 같은…
반인반수 때처럼 온 가족과 일가 친적까지 사상검증을 하고 지하실에 끌고 가서 몽둥이 찜질, 물고문, 전기고문을 해야 속이 시원한 것입니까!?
그 일을 글로 쓰는 기자를 데려다 고문을 하고 쥐도 새로 모르게 죽인다 협박을 하고 그 언론사를 문 닫게 해야 속이 시원한 것입니까?

마지막으로 이 일을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라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보기를 들어 미국 같이 연방국에서는 주마다도 법이 달라 일 처리도 달라집니다. 심지어 어느 주에서는 합법인 게 다른 주에서는 불법이 되기도 합니다.
비록 우리 국민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우리 법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게 됩니다.(그게 그 법과 절차에 맞았는지 따지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게 우리 법 절차에 맞았다면)그걸 남의 나라가 뭐라 하는 걸 ‘내정간섭’이라 합니다.
그것이 또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갔을 때는 그 나라 법에 따라야 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하다못해 정서 상으로도 그러해야 합니다.)
비슷한 일이 앞서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금강산 관광객 사망 사건’입니다.
그 분도 비록 무슨 속셈이 있었던 건 아니었겠지만-돌아가셨으니 확인할 방법도 없고…- 어쨋든 군사지역으로 들어갔고 사살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 후방에도 ‘군사보호구역’이란 것이 많았는데 거기에는 늘 어김없이 ‘접근시 발포함’ 같은 경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물론 접근했다고 바로 총을 쏘지야 않겠지만 그렇게 총을 쏘아도 적법하다는 걸 알리는 것입니다.
금강산 관광객 건에 있어서도, 경고 사격을 할 수도 있었지 않았느냐 던지 하는 걸 따질 여지는 있었지만 그 분이 관광객에게 허용된 구역을 벗어났고 군사지역으로 들어간 것은 거의 확실한 듯한데 그게 확실하다면 우리로써는 사실 뭐라 따질 말이 없는 것입니다.(거꾸로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고요…)
이 일에 따져 대들고 싶은 분도 있을 듯하여 덧붙이자면,…
이 일이 있기 앞서 심지어 북한 땅인 금강산 관광구역 안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운전을 잘못하여(음주운전이었다고… 명백한 과실사유!) 북한군을 죽고 다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40일 만에 돌아왔고 면허 취소,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끝이 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명백한 불법 사유로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했는데도 40일 만에 풀려납니까?
만약 북한 관광객이 남한 땅에서 우리나라 군인을 죽고 다치게 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난리났겠지요?

그 월북한 공무원 가족들이야 무엇에라도, 어디에라도 따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 정치를 책임지는 정치인 나부랭이, 진실을 전한다는 언론 나부랭이들은 뭔가요?
겅말이지 요즘은 제가 방송, 언론을 안 보고 있는 게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 거짓말, 쓰레기, 협잡, 음모를 퍼뜨리는 꼬라지를 안 보고 있으니,…
잘라 말하건대,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건 기본도 안 된 정치인과 악마나 할 짓거리를 하고 있는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덧붙이자면, 세상이 얽히면 얽힐 수록 개인에 대해서도 사회가 나라[정부]가 책임져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지도 얘기하는 것이고-또 이 ‘복지’는 걷어가는 세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책임을 져 주는 것이 맞겠지요…- 사회의 책임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모든 것이 정부 탓이거나 사회 탓은 아닌 겁니다.
‘자유’와 ‘권리’는 모든 걸 내 맘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그걸 다시 떠올려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슬픕니다.
그리고 그들이 빼앗아 누리는 ‘권리의 한계를 벗어난 권리’,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자유’가 정작 그것을 누려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옭아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 다른 분들 생각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냥 말꼬리 잡기나 사소한 걸 물고늘어지는 것만 아니라면 어떤 생각이라도 반깁니다.(특히 저와 조금 다른 방향의 생각도 반깁니다.)

와이파이나 데이터로 공짜 문자 주고 받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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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써오던 SMS하고는 다른 RCS 서비스라는 게 생겼는데, 이게 알뜰폰 회선에서는 안 되도록 차별을 주어 꽤 언짢았는데, 구글 메시지를 통해서 와이파이(Wi-fi)나 데이터를 통해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어 알려 드릴까 합니다.(따로 문자 송신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저처럼 싼 요금제를 쓰시는 분들은 공짜 문자가 없어서 종종 불편한데, 이제는 가족끼리는 공짜로 문자를 주고 받을 수도 있고, 특히 가끔 신호가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에서도 와이파이만 된다면(정 안 되면 신호가 터지는 회선을 쓰시는 분으로부터 와이파이 핫스팟 공유를 통해서 보낼 수도…)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겠습니다.(제 아는 분 집이 네트워크 신호가 안 터지는 곳이 있거든요… ^^)
단, 구글 메시지를 쓰는 사람끼리는 공짜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고 그 밖에는 기존 SMS처럼 요금제에 따른 요금을 내게 됩니다.

쓰는 수

먼저 구글 메시지를 깔고 열면 기본 앱으로 설정할지를 물어보는데 반드시 기본 앱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바꿀 수 있으니 기본 앱으로 설정한 뒤 오른쪽 위 점 세개(설정 메뉴)를 눌러 ‘설정’ 항목으로 들어가서 맨 위 ‘채팅 기능’을 눌러 설정합니다.(아마도 처음 쓰는 거라면 몇 가지 안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맞쓸모[앱]를 다시 껐다 켜시면서 안내에 따라 진행을 합니다.)

‘메시지 웹 버전’ 메뉴를 통해서 PC에서 웹을 통해 문자를 주고 받을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오래 일하는 분들께는 매우 쓸모 있을 듯합니다.

How to send free text messages with Wifi or data

Google’s “Message” application allows users to send and receive free text messages among themselves.
I haven’t checked it yet, but maybe we can text each other.

RCS, 채팅+, 채팅서비스, 구글메시지, Google Message, 

코로나 시대의 복지에 대하여 –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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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화가가 술집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다가 바닥에 뒹구는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경기가 나빠지고 있고 앞으로 더 나빠질 거라는 기사가 있었다.
곧 경기가 나빠진다니 앞으로는 술을 줄여야겠다며 술집을 나왔는데, 그 얘기를 들은 술집 주인은 곧 경기가 나빠질 테니 맞추려던 양복을 취소했고, 그 얘기를 들은 양복점 주인은 경기가 나빠진다니 양복점에 걸려던 그림을 물렀는데, 그 그림이 바로 처음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화가가 주문받은 것이었다.
모처럼 있던 그림 주문이 취소되자 속상한 화가가 다시 그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다 전에 봤던 그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자세히 보니 10년 전 신문이었더란다.

아마도 이 사람 이름 나오면 경기 일으키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상’과 엮지 않고 ‘경제’ 쪽만 봐서는 ‘칼 맑스’가 엄청난 사상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그리고 우리는 어차피 경제 쪽만 볼 거다. 괜히 쫄지 마시라.)
칼 맑스가 내다 봤듯이, 자본주의가 엄청 발전을 하게 되면 생산력은 높아지고 그래서 사람들은 일을 거의 안 하고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게 이 사람 예측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게 칼 맑스가 예측했던 그 사회의 단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떤 면에서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못 먹고 못 사는 사람은?
그것은 ‘분배’ 문제일 수도 있겠고 그 끄트머리 한 자락인 ‘복지’ 문제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자본주의는 처음 생겨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왔고, 그게 ‘공산주의’라는 백신을 맞아서 인지 아닌지는 제끼더라도 지금의 자본주의는 처음 자본주의하고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우리나라로 치면 지금 체제는 ‘수정자본주의’와 ‘신자본주의’ 그 사이 어디 쯤이 아닐까 싶다. ‘신자본주의’ 쪽으로 기울었다는 목소리가 좀더 많은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달라진 경제체제는 우리 생활에도 좀더 다른 모습을 요구하고 있는데, 바로 이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얼마 전부터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는 단지 옛날에 겪던 여느 돌림병과는 생판 다른 모습이다.(그래서 어떤 이들은 옛날 중세에 유럽을 휩쓸던 ‘페스트’-흑사병-에 견주기도 한다.)
그 가운데 경제 생활의 충격이 가장 직접적이면서 큰 부분이 아닐까 싶다.(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 당장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이것에만 신경쓰는 면이 있지만, 멀리 보자면 참으로 여러가지를 미리 살펴 두어야 한다고 본다. 어차피 흐름을 주도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따라는 가야지, 흐름과 다르게 움직이면 잘 되면 영웅이지만 안 되면 그냥 만신창이 밖에 안 남는다.)
전문가들이 예측하다시피 이 코로나19는 우리 곁을 떠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마치 감기처럼 함께 살아야 할 텐데, 그러다 보니 사는 모양새가 다를 수 밖에 없고 또 돈을 쓰는 모양새가 달라질 수 밖에 없으며 지금껏의 경제 흐름에 맞춰 살던 많은 사람들은 곤란을 겪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한 차례 ‘재난지원금’이란 것도 받았고, 이것을 계기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더 활발해 지고 있다.

‘재난지원금’이 그랬듯, 돈을 가져가기만 하던 정부가 이제는 ‘복지’같은 무형이 아닌 돈으로 바로 돌려주는 복지정책-기본소득제-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쉽게만 설명하자면, ‘기본소득’은 아무 조건없이 최소 생활비를 정부가 국민에게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아무 것도 안 했는데, 맨날 돈을 뺏아가던 정부가 아무 조건없이 돈을 주다니…!!!)
그럼 이렇게 아무 조건없이 돈을 주면 누가 굳이 열심히 일 하겠는가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기본소득’에 대해 전혀 알려고 하지 않고서 아무 생각없이 하는 소리다.
‘기본소득’은 그야말로 ‘최저생계비’ 정도만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만 주는 거다.(용돈을 주는데 딱 차삯하고 점심값만 주는 것이다. 딴 걸 하고 싶으면 네가 벌어 쓰라는 거다.)

지금은 먹는 것만 있어도 감지덕지하는 보리고개 때가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좀더 높은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싶어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받더라도, 이런 혜택을 누리려면 스스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아니면 남들 호사 부리는데도 정말 입에 풀칠만 하고 최저생활을 하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그리고 이미 기본소득으로 최저생계비는 확보가 되므로 좀더 저가 하고픈 일을, 재밌게 할 수가 있는 일을 찾을 것이며, 남는 여가 시간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며 결국은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데에 이바지를 하게 된다.
그럼 또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럼, 힘들고 어려운 일은 누가 하는가!’
맞다. 사는 게 쉬워지면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단지 어떤 일을 하느냐,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돈을 받았다면, 이 즈음부터는 남이 안 하려는 일, 하기 싫어하는 일에 경쟁력이 더 생긴다.(자본주의 원리가 그렇고 경쟁의 원리가 그런 것이다. 그게 싫으면 자본주의를 바꿔 보시던가! 아, 물론 남이 안 가진 능력을 가진 사람이 가지던 경쟁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한 고을 안에 갇혀 살던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경제 테두리가 달라졌고 사람들의 인식 또한 달려졌기에 왠만큼 살기 어렵다고 아주 편하게 살던 사람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던 때는 지났다고 본다.
즉 단지 경제 사정을 나쁘게 해서 경제의욕을 급격히 끌어올리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건 아무리 경제가 나빠져도 3D업종을 여전히 인력난이며 그 구멍을 새로운 경제약자가 채운다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흐름 위에서 더 나은 방향과 방법을 논의해야 발전인 것이지, 이런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공산주의 정책'(혹은 사회주의 정책)이라느니 욕하는 것은 무턱대고 싫고 싸우자는 것이지 결코 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더 이상 옛날처럼 이름 뿐인 이념 가지고 싸우던 때는 지났다.(사실 일찌감치 지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걸 가지고 싸운다.)
얘기의 중심은 아니지만 살짝만 살펴보자면, 솔직히 우리가 누리는 것들 가운데 ‘공산주의스러운’ 정책이나 그에 영향을 받지 않은 정책이 얼마나 되나!
내 자식 교육시키는 데에 모두의 세금이 들어가고, 내가 아프면 세금으로 때워주며 내가 나이들면 세금으로 도와준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영향이든 자본주의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자본주의를 ‘무조건’ 되돌리려거나 무조건 뒤엎으려는 이가 아니라면, 지금 자본주의 모습은 자본주의를 이어가고 발전시키는 데에 가장 알맞은 모습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즉 가장 자본주의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니 제발 무슨 가죽옷 입고 돌도끼 들고 토끼 쫓아다니던 시절 같은 얘기는 하지 말기로 하자.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무상급식’을 하려 했을 때도 했던 얘기처럼, ‘굳이 잘 사는 사람에게 까지 복지 혜택을 줄 필요가 있는가’, ‘보편복지가 보편화되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포퓰리즘 정책’이라느니 하는 얘기는 이미 철 지난 얘기이니 넘어가기로 하자.(스스로 보수정당이라던 당마저 결만 다를 뿐 복지정책을 세게 내세우고 있다.)
거꾸로, 선별복지를 하게 될 때, 선별 문제나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도 이미 많이 얘기되어 오던 것이니 넘어가자.
그것이 우리 경제력이 높아져서이건, 재난이 일상이 되어서건 간에 이런 식의 복지 정책이 좀더 잦아진다고 봤을 때 지금부터 그런 것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고 연구하고 실제 적용해 봐야 한다고 본다.(여기서 꼭 짚고 넘어 가자. ‘경제력’이 높아졌다고 해서 반드시 언제나 ‘경제’ 사정이 좋은 건 아니다. 몸이 튼튼하다고 해서 감기에 아예 안 걸리는 게 아닌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선별복지’가 완전히 그 값어치를 잃은 것도 아니다. 다만 큰 흐름이 ‘보편복지’ 쪽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지…
지금껏 해 오던 ‘선별복지’는 여전히 어려운 계층을 살펴야 할 것이며,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더 강화되고 발전되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역시 가장 좋은 쪽은, 어느 한쪽의 이름에 매달리지 말고 서로의 장단점을 잘 살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보편복지’를 비판하는 이 가운데 이것이 마치 ‘홍익인간’ 이념이나 호혜평등의 이념처럼 무슨 대단히 큰 값어치 때문인 양 하는 듯한 핑계를 대는데, ‘보편복지’가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값어치여서가 아니라 지금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 점도 분명히 했으면 싶다.

‘지금’이라는 때만 놓고 보자면, ‘좀 더 어려운 사람에게’라는 선별혜택이 말이 되는 듯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경기가 좋다가 갑자기 나빠진 때가 아니며 세계가 모두 경기 불황에 빠지던 때에, 또 세계 어디나 할 것 없이 ‘코로나19’ 때문에 더더욱 경제가 나빠졌고, 무엇보다도 경제 상황이 일정하게 나빠지던 때와는 달리 급변하는 상황에 따라 경제 사정이 나빠진 이들도 많으며 그 범위가 수준이 급변하고 있으며 이것이 조만간 끝나리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두루 살핀다면 지금부터라도 ‘보편복지’에 대해 살피고 실험하고 적용해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한 줄로 줄임 : 선별 재난지원금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보편복지를 실험하고 강화해 나가야 할 때라고 본다.(이 쉬운 얘기를 저렇게나 어렵게 한 거였어? ㅡ.ㅡ)
  • 덧붙임.
    아마 여당인 민주당 쪽에서 재난지원금을 선별지급하는 쪽으로 결론을 낸 모양인데, 그러면서 민주당 최고위원 ‘신동근’이란 분이 “고위공무원인 OOO나 제가 지원금 받을 이유 있냐”고 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한 때는 선별복지 쪽을 지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지지’라기 보다는 그 쪽에 좀더 기울었던 것이고 딱히 선별인지 보편인지를 살필 만큼 인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무상급식’, ‘무상복지’ 논쟁이 붙었을 때 저 역시 ‘왜 굳이 부자들에게까지 혜택을 주어야 하나! 그들은 이미 잘 살고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그 논쟁을 지켜보고 또 좀더 깊이 살펴보면서, 지금에서 복지는 단지 못 살고 불쌍한 사람에게 베푸는 적선이나 베풂[시혜]이 아니라 이 사회(자본주의!)가 발전한 혜택을 서로 나누는, 기름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지금 복지는 거지에게 던져주던 동전이 아닙니다.

청와대 청원 ‘시무7조’의 옛시대적 시각에 대해 꾸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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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청원에 ‘시무7조’라는 뛰어난 글이 올라왔다고 몇몇 주류 언론에서 빨아 제끼길래 어떤 글인가 싶었는데…
그 글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어느 곳에 올리려 쓴 글인데 좀 쉽게 쓰려고 아주 단순화해서 풀었으니 표현상의 흠 같은 건 너그러이 봐 주시고 논지에 관한 의견은 얼마든지 반깁니다.

이 글을 쓰려고 읽고 또 읽어보니, 읽을 수록 엉망인 글이네요. 차라리 최만리의 상소문이 훨씬 뛰어난 글인 듯…
딱히 논리도 없고 그냥 거칠고 정제되지 않고 다듬어 지지도 않은, 욕설 같고 배설 같은 글…
글이 길고 제가 쓸 말도 길 수 있으니 딴 얘기 않고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요점만 짧게 쓰다보니 너무 좀 건너뛰거나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필요하시면 질문도 받습니다.

  1. 세금을 줄여라?
    현대 국가들이 세금을 늘리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단순 산수를 하자면 세금을 늘리면 국민들 부담이 늘어나니까 국민들이 안 좋아하고 세금을 늘리는 정부는 욕 먹을 게 뻔한데…? 그건 그야말로 21세기에 더하기 산수 만으로 우주선 쏘겠다는 소리입니다.
    자본주의 역사를 짧게 봅시다.
    다들 잘 아다시피 산업혁명 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전체 주머니가 늘어나면서 풍족해야 맞을텐데 이상하게 소비가 안 되고 가난한 사람이 극단적으로 늘어납니다..(여기서 그 반작용으로 공산주의가 나타나고 어쩌고는 빼고요…) 요즘은 ‘노동자’라고 부르는 근로자는 물건을 생산하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소비를 하는 주체이기도 한데 쓸 돈이 없으니 소비를 못하고 생산량은 많아지는데 소비가 안 되면서 자본주의가 스스로 망할 지경이 됩니다.
    그래서 나라(혹은 정부)가 개입을 해서 이른바 ‘복지정책’이라는 여러가지를 쓰게 되고 세금으로 부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면 이른바 자본가 계층에서 보기에는 제 주머니 돈을 뺏아서 모두에게 나눠주는 것처럼 보여서 무척 싫어할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왜냐! 사람들 주머니가 두둑해야 물건을 사 줄 것이고 그래야 제 주머니도 두둑해 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서구 몇몇 나라는 세금이 50%가 넘는 곳도 있는데 물론 제 힘으로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반드시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왜냐! 그 세금들이 다시 복지가 되어 돌아가니까요!
    옛날 전제시대에는 세금은 권력층을 위해 대부분 쓰이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이야 죽어나던 말던 세금을 거둬들여 민란도 일어나고 그랬지요. 하지만 현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세금은 곧 복지고, 세금이 적으면 복지가 적은 게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복지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 이른바 부자들 가운데서는 세금을 무척 싫어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아닌 사람은? 싼 삯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수도, 전기 같은 걸 싸게 쓸 수 있는 건 그만큼 세금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거기에 내가 직접 돈을 안 준다고 내 돈 안 들어간 거 아닙니다.)
    세금을 줄이면? 애들 교육시키는 거, 나이 드신 분들 여러가지 복지혜택, 싼 생활기반시설들 다 제 돈 내고 써야 합니다.(그럴 자신 있으신 분들은 세금 줄이자고 주장하면 됩니다.) 하다못해 지금 우리가 편하게 이용하는 통신도 옛날 KT가 깔아놓은 기반시설에 힘입은 바 큽니다.(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아주 초보적인 통신환경을 가졌거나 엄청나게 비싼 돈을 내며 인터넷, 핸드폰을 써야 할 것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나는 그 모든 사회적 비용을 내 힘으로 댈 수 있다 싶으면 세금을 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세금을 낼 테니(혹은 더 낼테니) 그에 맞게 나에게 복지 혜택을 달라고 해야 더 알맞을 것입니다.
  2. 감성? 이성?
    이는 아마도 우리나라 복지 방향에 대해 쓴 모양인데, 고전적인 시간에서 보자면 요즘 복지는 마치 옛날보다 덜 일하는데도 옛날보다 더 주려하는 것을 비판한 것 같습니다.
    다시 옛날 산업혁명 때로 돌아갑시다.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엄청난 부자들이 늘어났으나 나라 전체로 봐서는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고 그래서 소비가 늘지 않아 전체적인 자본주의 침체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개입을 하고 조금 덜 일해도 돈을 더 받을 수 있게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얼핏 이상한 것 같지만 고된 일은 이미 기계가 해 줍니다. 기계가 일할 수 있도록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그 혜택을 나누는 것인데 그것은 단지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가 살기 위해서, 다른 말로는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계속 쭉~ 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어떤 명분이 없다면 그 사람들이 제 돈이라 생각하는 돈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하지 않겠지요.)
    그렇게 유형의 노동이 아닌 무형의 노동이 생기고 그 뒤로 세상은 더 발전해서 어떤 사람들은 잘 놀아주면-이 말이 무척 거슬린다면 이렇게 바꾸면 됩니다. ‘잘 소비해 주면’- 자본주의가 더 잘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 장사 하시는 분들은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그 시간에 전부 일터에 매어 있다고… 그러면 당장 여러분은 수입이 확!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돈을 수시로 써 주기 때문에 장사하시는 분들이 사는 겁니다.(당연히 ‘불로소득’이나 이런 문제는 다른 문제입니다.)
    얼마전 다들 재난지원금을 받았을 것입니다. 옛날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맨날 돈을 뜯어가던 정부가, 아무 이바지도 안 했는데 나에게 돈을 주네?
    그건 여러분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 만은 아닙니다. 여러분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돈을 쓸 것이고 돈이 돌아야 전체 경제지표가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냥 아주 쉽게 얘기하자면, 폐활량이 큰 사람이 물 속에서 오래 버틸 것이고, 숨이 다 된 사람에게 작은 공기 주머니라도 물려주면 그것으로 다시 얼마 간은 더 버틸 수 있는 겁니다.
    요즘 자본주의는 그렇게 돌아갑니다.
  3. 명분보다 실리?
    이 논리야 말로 말은 좋으나 실은 거꾸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낱말과 그 대상 나라가 바뀌었을 뿐 이는 그야말로 조선시대 사대론을 빼다 박았습니다.
    조선시대에 우리가 사대하다가 가장 망한 게 뭡니까?
    명나라는 형님 나라이니 무조건 그에 따라야 한다고 하다가 다른 나라에 유린을 당했습니다. 어느 나라와 친하고 말고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익에 따라 되도록이면 모든 나라와 친하게 지내되 국익에 반하면 거리를 둘 수도 있고 그런 문제입니다.
    나라 사이 일은 그야말로 나쁘게 말하면 뒷골목 조폭 세계와 같습니다. 이익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나라가 동맹이라고 모든 걸 걸어 도와준답니까!
    또 장사를 보기를 들어 말해 봅시다.
    내가 시장에 가서 가장 좋은 물건을 쌀 확률은, 여러 가게들을 둘러보고 품질에 비해 괜찮은 값을 부르는 것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자주 가던 단골인데, 바가지인 줄 알면서도 거기만 줄곧 이용하는 건 요즘말로 ‘호구’ 짓입니다.
    그게 실리입니다.
    아베가 실리외교라고요? 저 분은 틀림없이 언론을 고루 안 보시는 모양입니다. 아베가 미국에 잘 보이기 위해 미국에 얼마나 호구 짓을 한 지를……
  4.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라?
    뭔 소린지… 장관과 정치계 인사들을 까다가 갑자기 ‘욕구를 인정하라’니… 뭔 욕구? 짖을 욕구?
  5. 신하를 가려 쓰라?
    뒤로 갈수록 할 얘기가 딸리는 듯…
    일단 제목은 아주 좋았으나, 지금까지 정권에서 일한 신하들을 쭉 늘어놓고 보았더라면 이런 얘기는 못 했겠지요?
    내 편 아니니 씨 말려 죽여라고 한 김기춘? 대통령 드라마 골라주던 이영선? 문자로 해고통지 받았지만 계속 총리했던 아무개? 남의 나라 가서 빤쓰 내린 윤창중? 대체 누구랑 비교하라고!
  6. 헌법 가치를 지켜라?
    요즘 헌법을 제 입맛대로 해석하는 치가 꽤 되네요.
    얼마 전에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현장 예배를 제한한다고 했더니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거라고 헛소리를 하지 않나…(누가 종교를 버리라고 했나… ㅡ.ㅡ; 븅신~)
    임대차3법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뺏는 거라고요?
    하향평준화가 고교평준화를 얘기하는 거라면 그건 1970년대부터 시작된 건데 그것도 책임을 지라고요? 혹시 위화도 회군도 책임져야 하나요? 아니면 호랑이가 굴을 뛰쳐나간 것까지 책임을…???
    ‘재산권’ 얘기는 하나만 합시다.
    어떤 자본주의 나라도 절대적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땅’과 관련해서 다른 재화는 확대재생산 즉 집은 없던 것을 내가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땅은 한정되어 있고 그것에서 내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뿐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므로 재산권 행사에서 좀 다른 경우입니다.
    만약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일찌기 시행된 ‘토지공개념’에서 부터 헌법소원을 했어야 맞습니다.
    땅을 가진 것이 마치 절대권 개인 권리인 것처럼 개소리하는 이들이 꽤 되는 모양인데, 어느 땅을 내가 한번 가졌다고 영원히 그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잠깐 쓰는 권리를 가질 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 거의 대부분은 지금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사는 것입니다.(지금 사시는 땅이 인류가 처음 그 땅에 터를 잡을 때부터 조상 땅이었습니까?)
    오히려 제 땅을 못 가진 분이라면 땅에 관한 한은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 맞습니다.(소유권이나 사용권을 제한하는 것과는 완전 다른 얘깁니다.)
    집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어떤 물건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서 이윤을 얻는 건 자본주의에서 그렇다 치더라도 단지 땅을 가졌다는 것 만으로 이윤이 생긴다면 이야말로 불로소득 가운데 불로소득입니다.
  7.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하라?
    이건 그냥 ‘시무7조’라 해 놓고 숫자 채우려고 붙인 얘기인 듯…
    할말 없으면 그냥 마무리 글이나 쓰실 것이지…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어떤 정책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개인의 자유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 정치는 연예인 인기 투표도 아니고 그것을 비판하거나 옹호할 때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자신의 의견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많이 가진 이가 못 가진 이를 대변하는 것, 좋습니다.
나는 하나도 못 가졌지만 모두 가진 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그게 제대로 된 판단 근거에 따른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노예제를 없애 주겠다니까 노예가 소유주 걱정을 해 주는 건 과연 제대로 된 판단입니까?
제 정신으로, 제대로 된 근거를 가지고도 그렇게 주장한다면, 저는 손뼉을 쳐 드립니다. 짝짝짝~

쓸모없는 언론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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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언론이 왜 필요없는 존재인가 하면,…
‘사실’을 ‘객관적’으로 라는 핑계로 무미건조하게 딱 보여주고 싶은 것에만 촛점을 맞춘다.
무척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해 보이지만, 세상 일은 복잡하고 여러가지 요소가 있는데 딱 거기만 비춰주면 거기만 커 보인다.
세상에 미친 놈은 많다. 개 다리가 몇 개냐고 물어봐도 꼭 100에 한둘은 엉뚱한 답을 고른다.
하지만 그게 일반이 될 수는 없다.
사실에 대해 온갖 근거없는 비방을 하거나, 사실을 제 맘대로 부풀려 제가 보고 싶은 것만 얘기하는 치들은 언제나 있어왔고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만 촛점을 맞추면 이 세상은 온통 미친 놈들만 있는 세상 같아 보인다.
그게 언론이 하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관심, 그리고 언론이 할 일은 그런 미친 놈들 논리에 촛점을 맞춰 확대재생산하고 싸움을 붙이는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뒤에 숨어 있는, 예사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주고 본질을 보여주고 또 그것을 가지고 논쟁을 하도록 해 주는 것이다.(그래야 사회가 발전이 된다. 도대체 무미건조하게 ‘어디서 누구가 차에 받혀 죽었다’는 것이 왜 아까운 신문에 방송에 나와야 하는가! 적어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그 사고가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지가 붙어야 하는 건다.)
객관적인 척 싸움만 붙이는 언론들, 본질은 없고 현상적인 것만 나불대는 언론, 이젠 지겹다.

‘선’과 ‘악’은 나누어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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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식이 기계화 하다 못해 사이비 종교화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이는 아무래도 ‘#이분법’에 익숙한 탓이 아닐까 싶다.
‘선’과 ‘악’은 (구분되기 쉽게)딱 나누어져 있다는 이분법.
그 금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나 같은 착한 사람은 결코 그 금을 넘어갈 리가 없다는 자만심.
그렇게 논리적이고 철학적이라는 게르만(독일) 민족이 왜 인종청소에 참여하거나 방관 했겠나.
그 선은 결코 나누어져 있지 않고 그것을 저지르는 자 역시 나누어져 있지 않다.
누구라도 잘못된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 선을 너무나 쉽게 넘을 수 있고, 누구나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다.
‘나는 착한 사람이고 내 시작은 착했어’라는 것은 결코 핑계, 방패가 되어 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두리갈'[인문학]을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우리가 사는 세상을 깊고 넓게 이해하기 위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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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다시 조금 시들해지긴 했지만 ‘인문학’이 유행입니다.
한자말들이 대개 그렇듯 ‘인문학’이 뭔가요?(한자로는 ‘人文學’이라 하고 영어로는 ‘Humanities’ 뭉뚱그려서는 ‘Arts’라고도 한다 합니다. 이를 두고는 ‘인문학이 가져야 할 참된 역할‘을 봐 주시압.)
‘인문학’을 쉽게 얘기하면 사람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학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솔직히 너무 흐릿하고 너무 넓습니다. 영어 ‘Humanities’는 그나마 어렴풋이 이해는 하겠는데 대개의 한자말이 그렇듯이 한자말 ‘人文學’으로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짐작컨대 ‘사람+학문’이란 뜻이 아니라 ‘사람+문화’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문학’을 쉽게 ‘사람두리갈‘ 혹은 인문학의 의의에 무게를 둔다면 ‘사람다움갈‘이라 부릅니다.(‘-갈’은 ‘-학(學)이란 뜻으로 앞에 맨 우리말을 쓰다보니 쓰게 된 맨우리말입니다.)

요즘 사회가 다양화되다 보니 여러가지 온갖 견해들이 목소리를 내고 서로 맞부딪히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이런 저런 까닭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래서 뜻하지 않게 억압받던 역사를 생각하면 무척 좋은 일이긴 한데, 이렇게 온갖 목소리들이 나오다 보니 그 목소리들이 또다른 억압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그 목소리들이 채 여물지 않은 채 터져나오기도 합니다.
세상을 혹은 사람두리에 얽힌 일들을 넓고 깊게 보지 못한 채 나오는 목소리들 때문에 새로운 편견과 억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같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럴 때일수록 ‘사람두리갈'[인문학]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두리갈'[인문학]에 눈길을 주고 또 익히며 서로 토론하도록 하고자 ‘텔레그램’에 ‘사람두리갈'[인문학] 관련 채널을 두 군데 열었습니다.
먼저 ‘텔레그램’에 연 “인문 상식과 인문 정보 채널”입니다. 이 채널은 ‘교양’으로써의 ‘사람두리갈’, ‘상식’으로써의 ‘사람두리갈’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사람두리갈’에 좀더 쉽게 다가가자는 뜻으로 만들었습니다. 좀더 쉽게 다가가자는 뜻에 맞춰 논란이 될 만한 주제는 되도록 피하고 쉬운 주제로 끌고 가고자 합니다.(모둠방으로는 “인문 상식과 인문 정보 사랑방”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두리갈[인문학]” 채널은 좀더 무겁거나 논쟁거리가 될 만한 얘기들을 올리고자 합니다. 널리 공인되지 않거나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적은 목소리[소수 의견]에 대해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결코 받아보지 마시기 바랍니다.(이 역시 모둠방으로는 “사람다움을 위한 인문학 사랑방”이 있습니다.

‘사람두리갈'[인문학]은 어렵다면 어렵지만 쉽다면 쉬운 학문입니다.
세상을 좀더 넓고 깊게 보기 위해 ‘사람두리갈'[인문학]에 좀더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기분과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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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기분’과 ‘사회적 인식’은 달라야 한다.

내가 똥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 혐오스럽다 해서 그걸 사회적 혐오로 봐서는 안 된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든 사회적 행동은 모두 ‘혐오’로 규정될 수 있다.

‘자유’나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규정지어버리는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원리, 원칙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느낌’이나 ‘기분’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라고 본다.

되풀이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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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분석은 현상을 보고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껍데기를 보고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는 조금이라도 별난 짓은 결코 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저 년이 어제 밤 몰래 돌아다니더라. 저 년이 마녀다!”
“조센진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들이 우리 민족 피를 더럽힌다!”
역사는 교묘하게 되풀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