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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이 기독교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할 때 그 곳 원주민의 문화, 종교를 ‘미신’이라 딱지 붙이고는 자신들의 종교와 사는 방식을 강요했다고 합니다.(‘종교’에 ‘미신’과 ‘과학’이라니… ㅡ.ㅡ)
옛 소비에트연방 ‘후르시초프’가 인디아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공항에 내리면서 모래바람이 이는 걸 보면서 감탄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아시다시피 러시아 모스크바 쪽은 거의 늘 눈에 덮여 있습니다. 황량한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성가시기만 한 모래바람이,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는 이에게는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돼지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돼지 캐릭터가 주인공인 만화영화 방영이 금지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을 부를 때 손 끝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움직여 부르는 데에 견줘 서양권 가운데 일부는 손 끝을 위로 해서 움직여 부른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문화권에서는 아래로 늘어뜨리고 부르는 걸 무척 모욕적인 짓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사람 신상을 꼬치꼬치 캐묻는 걸 무척 무례한 일로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동양권?)에서는 친해지기 위해서는 나이, 학교, 출신 지역 같은 걸 먼저 물어봅니다.(물어봤습니다! 지금은 그러면 예의없는 걸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옳고 틀리고의 차이가 아니라 문화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 차이가 가끔 충돌을 하면 단순한 문화차이로 인한 표현이 차별이나 혐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불교의 만(卍)자는 그냥 불교 표식일 뿐이지만 나찌를 겪은 서양 사람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卐. 물론 모양이 살짝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은 같은 기원입니다.)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으면서 ‘관짝소년단’이라는 것을 흉내냈다가 ‘인종차별’이라 욕을 먹고 있는 모양입니다.(‘관짝소년단’을 두고는 글 아래를 봐 주시압.)
확실히 세상은 넓어졌고 또 우리가 살던 세상도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살던 대로 생각하고 판단해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거기에 맞춰 더 넓게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흑인 분장을 한 학생들에게도 따끔하게 일러 줄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단지 그런 분장(얼굴색)을 했다는 것 만으로 그 학생들이 한 짓을 인종’차별’이라 규정하는 건 너무한 짓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흑인은 검은 얼굴이기에 연극 같은 데서도 흔히 쓰는 화장법이고, 히틀러를 표현할 때는 코수염(채플린도…), 예수를 표현할 때는 긴 머리칼, 처칠은 시가, 링컨은 수염, 체게바라는 베레모….(그러고 보니 처질, 링컨, 체게바라를 그렇게 표현했다고 욕하는 걸 본 적은 없네요.)
심지어 서양에서 동양인 비하표현이라는 눈 찢는 행동은 우리 어릴 때는 눈이 작은 친구들을 놀리려 우리 스스로 했던 행동이기도 합니다.(스스로 비하?)
모든 평가는 상식과 시대에 맞아야 하는데 확실히 세상은 바뀌었고 조심해야 할 부분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가지고 너무나 쉽게 규정해 버리는(이분법! 다른 것에 대한 혐오!) 세태가 안타깝고, 사진까지 돌리며 욕 먹고 있는 그 학생들이 안타깝습니다.

미국을 포함해서 서양에서는 흑인에 대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흑인노예’하면 미국만 주로 생각하지만 전 유럽을 걸쳐 왠만큼 힘있던 나라들은 다 아프리카를 착취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들만 나무랄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인종을 잡아다가 부려먹었지만 우리는 같은 겨레를 계급을 나눠 부려먹었으니까요… 아, 물론 미국에도 같은 백인도 계약제 노예 같은 게 있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흑인을 무시하고 깔보고 낮잡아 온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다보니 요즘은 그러지 말자고 하면서 그런 것에 대한 경각심을 더 가지는 것입니다.(문화에서 그런 일들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번 의정부고 학생들 일이 안타까운 건, 그들이 좀 조심성이 없기는 했지만 그들의 흉내가 여기저기 입길에 오르내리면서 얼굴이 드러난 사진까지 쓰이고 있고 또 욕을 먹고 있으니 그들은 또 얼마나 놀라고 겁이 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굳이 이 일을 거드는 까닭은, 우리가 세상이 좋아지면서 약자에 대한 의식이 넓어진 것 까진 좋은데, 가끔은 그게 ‘권력’의 또다른 모습을 띄고 있기도 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풀기 시작하면 또다른 글 하나 쓰고도 남을 일이라 길게는 쓰지 않겠습니다만…)가끔은 약자를 입에 올리는 것 만으로도 약자 ‘혐오’와 ‘차별’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합니다.
‘외발 자전거’, ‘벙어리장갑’, ‘외눈박이 물고기’, ‘처녀치마’… 이런 것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차별’이고 ‘혐오’라는 걸 보면서 저는 오히려 “저 사람들은 오히려 ‘다름’을 ‘차별’로 보는 건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모욕을 주면서 장애를 들먹인다면 당연히 그건 나쁜 짓입니다. 그건 장애를 들먹였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모욕을 했고 그것에 장애까지 들먹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냥 표현을 위해서 쓰는 거라면 얘기가 좀 다릅니다.
물론 그것을 듣는 누군가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장애를 일컫는 말이 아니더라도 표현을 삼가고 조심해야겠지요.
머리 숱이 적은 사람 앞에서 ‘대머리’라는 표현은 안 쓰는 게 맞습니다. 그건 그로 인해 누군가가 마음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배려하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고서 단지 ‘머리 숱이 없는 사람’을 일컬을 때는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의사가 대머리를 치료할 수 있는 수를 알려주면서 뭐라고 해야 합니까?
왜 ‘봉사’는 차별 낱말이고 ‘시각장애인’은 괜찮은 겁니까? 왜 ‘귀머거리’는 안 되는데 ‘청각장애자’는 괜찮은 겁니까? 한자말이라서? 그럼 욕도 영어나 중국어로 하면 괜찮은 걸까요?
가끔 요즘 어르신들 가운데서는 ‘개가 우리보다 처지가 더 낫다’고 스스로를 비웃는 우스개를 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나이 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대우받던 때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합니다.
극진 페미들 가운데는 문학 작품까지 걸고 넘어지는 것도 봅니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쓰여진 문학작품이 남성중심 시선이 담겨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걸 거울삼아 고쳐 나가면 될 일이지…(여기까지만…)

한 가지만 더 덧붙입니다.
요즘 정의당 류호정 씨가 국회에 원피스를 입고 오른 것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압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 복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가 평소했던 말과 행동 때문에 그를 곱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저가 꼴 보기 싫다고 해서 그 사람을 욕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저도 그 이가 젊은 사람으로써 정치권에 젊은 바람을 불러 일으켜 주기를 바랬지, 세대를 나누고 감정을 앞세우고 서둘러 판단하며 치기를 드러내는 걸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옷을 핑계 삼아 그를 욕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믿음이 가는 사람이 하는 실수는 감싸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만, 적어도 그렇다고 잘못한 걸 정당화하거나 잘못이 아닌 것까지 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 현상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규정하는 것은 약자 차별보다 더 심각한 ‘차별’이며 ‘불평등’입니다.
냉철하고 철학적인 겨레라는 독일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에 속아 히틀러를 지지하고 또 히틀러의 인종청소를 일정 정도 못 본 척 혹은 도왔다고 봅니다.
인류 문명은 더욱 고도화되어 이제는 바야흐로 사람과 같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단계까지 들어섰습니다.
그렇다면 인류 지성도 그에 맞게 고도화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류 지성의 시선이 단지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는 것으로는 발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옛날 약자들은 배려 받겠지만, 거기서 새로운 약자들이 나올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계-사람과 자연과 형이상적인 것까지 포함하는-에 대한 이해가 앞설 때에만 치우침없는 판단에 가까워 질 것입니다.
그러자고 요즘 ‘인문학’-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해서 저는 이것을 ‘사람두리학’이라고 부릅니다.-을 배우는 까닭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끝으로 이 매체 별로 안 좋아하지만, 여기 밖에 이 소식이 없어서 올린다. 이 글을 보면 ‘관짝소년단’이란 게 뭔지, 또 그걸 흉내낸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 모습이 있으니 참고하시압.
<“땡큐, 코리아”…#의정부고 #인종차별 논란 종결시킨 ‘#관짝소년단’ 주인공의 인스타 게시물>

  • 덧붙입니다.
    어떤 분이 ‘백인 분장 한다고 얼굴에 흰 칠 하는 걸 본 적이 없’을 거라며 분장이 차별, 비하 의도가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의견을 주셨기에 덧붙입니다.
    글 길게 안 읽는 분을 위해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것이 논란이 될 수 있음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차별인지가 지금 요점입니다.
    어쩔 수 없이 흑인 분장을 위해 검게 칠하는 일이 흔하듯, 백인 분장을 위해 얼굴에 흰 칠을 하는 일도 잦습니다.
    그런데 (점잖게 하는, 즉 웃기려고 하는 의도가 없는)백인 분장은 욕 먹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 백인은 약자가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백인 분장한 ‘배두나’ 씨입니다. 이 분, 백인 분장했다고 욕 먹었다는 소리 못 들었습니다.

위가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는 것은 그들이 뭔가 크게 잘못 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혜택을 많이 봤더니 모두를 위해 조금 더 부담하라는 뜻입니다.
눈을 찢는 행동 역시 그 때는 그게 못된 장난일 수는 있어도 차별은 아니었습니다.
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서? 아닙니다.
문화가 바뀐 겁니다. 문화의 시야가 넓어진 것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벗 가운데 전라도 출신이 있었는데, 솔직히 ‘깽깽이’라 부르며 놀렸고 그 벗은 저에게 ‘문댕이’라 부르며 놀렸습니다. 그럴 정도로는 친했기 때문에…
그런데 친하지도 않은 다른 전라도 사람에게 ‘깽깽이’라고 하면 문제가 다른 겁니다. 혹은 여러사람이 있는 데서 그 벗에게 큰 소리로 ‘깽깽이’라고 했다 해도 문제가 다릅니다. 그걸 듣는 사람 가운데는 전라도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게 바로 상황에 따라 다른 경우입니다.

  • 덧붙임. ‘관짝소년단’을 따라 한 그 학생들이 오히려 ‘차별’은 물론 ‘역차별’까지 걱정하고, 학교에서 요구하지도 않은 제작의도까지 써서 냈다고 합니다. – 소식. 우리 지성이 그 학생들 수준 만도 못한 겁니까? 어째 기껏 우리 논의의 중심이 그 학생들, ‘샘 오취리’씨 변명 정도에만 머물러 있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