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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화가가 술집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다가 바닥에 뒹구는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경기가 나빠지고 있고 앞으로 더 나빠질 거라는 기사가 있었다.
곧 경기가 나빠진다니 앞으로는 술을 줄여야겠다며 술집을 나왔는데, 그 얘기를 들은 술집 주인은 곧 경기가 나빠질 테니 맞추려던 양복을 취소했고, 그 얘기를 들은 양복점 주인은 경기가 나빠진다니 양복점에 걸려던 그림을 물렀는데, 그 그림이 바로 처음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화가가 주문받은 것이었다.
모처럼 있던 그림 주문이 취소되자 속상한 화가가 다시 그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다 전에 봤던 그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자세히 보니 10년 전 신문이었더란다.

아마도 이 사람 이름 나오면 경기 일으키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상’과 엮지 않고 ‘경제’ 쪽만 봐서는 ‘칼 맑스’가 엄청난 사상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그리고 우리는 어차피 경제 쪽만 볼 거다. 괜히 쫄지 마시라.)
칼 맑스가 내다 봤듯이, 자본주의가 엄청 발전을 하게 되면 생산력은 높아지고 그래서 사람들은 일을 거의 안 하고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게 이 사람 예측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게 칼 맑스가 예측했던 그 사회의 단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떤 면에서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못 먹고 못 사는 사람은?
그것은 ‘분배’ 문제일 수도 있겠고 그 끄트머리 한 자락인 ‘복지’ 문제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자본주의는 처음 생겨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왔고, 그게 ‘공산주의’라는 백신을 맞아서 인지 아닌지는 제끼더라도 지금의 자본주의는 처음 자본주의하고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우리나라로 치면 지금 체제는 ‘수정자본주의’와 ‘신자본주의’ 그 사이 어디 쯤이 아닐까 싶다. ‘신자본주의’ 쪽으로 기울었다는 목소리가 좀더 많은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달라진 경제체제는 우리 생활에도 좀더 다른 모습을 요구하고 있는데, 바로 이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얼마 전부터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는 단지 옛날에 겪던 여느 돌림병과는 생판 다른 모습이다.(그래서 어떤 이들은 옛날 중세에 유럽을 휩쓸던 ‘페스트’-흑사병-에 견주기도 한다.)
그 가운데 경제 생활의 충격이 가장 직접적이면서 큰 부분이 아닐까 싶다.(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 당장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이것에만 신경쓰는 면이 있지만, 멀리 보자면 참으로 여러가지를 미리 살펴 두어야 한다고 본다. 어차피 흐름을 주도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따라는 가야지, 흐름과 다르게 움직이면 잘 되면 영웅이지만 안 되면 그냥 만신창이 밖에 안 남는다.)
전문가들이 예측하다시피 이 코로나19는 우리 곁을 떠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마치 감기처럼 함께 살아야 할 텐데, 그러다 보니 사는 모양새가 다를 수 밖에 없고 또 돈을 쓰는 모양새가 달라질 수 밖에 없으며 지금껏의 경제 흐름에 맞춰 살던 많은 사람들은 곤란을 겪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한 차례 ‘재난지원금’이란 것도 받았고, 이것을 계기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더 활발해 지고 있다.

‘재난지원금’이 그랬듯, 돈을 가져가기만 하던 정부가 이제는 ‘복지’같은 무형이 아닌 돈으로 바로 돌려주는 복지정책-기본소득제-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쉽게만 설명하자면, ‘기본소득’은 아무 조건없이 최소 생활비를 정부가 국민에게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아무 것도 안 했는데, 맨날 돈을 뺏아가던 정부가 아무 조건없이 돈을 주다니…!!!)
그럼 이렇게 아무 조건없이 돈을 주면 누가 굳이 열심히 일 하겠는가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기본소득’에 대해 전혀 알려고 하지 않고서 아무 생각없이 하는 소리다.
‘기본소득’은 그야말로 ‘최저생계비’ 정도만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만 주는 거다.(용돈을 주는데 딱 차삯하고 점심값만 주는 것이다. 딴 걸 하고 싶으면 네가 벌어 쓰라는 거다.)

지금은 먹는 것만 있어도 감지덕지하는 보리고개 때가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좀더 높은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싶어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받더라도, 이런 혜택을 누리려면 스스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아니면 남들 호사 부리는데도 정말 입에 풀칠만 하고 최저생활을 하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그리고 이미 기본소득으로 최저생계비는 확보가 되므로 좀더 저가 하고픈 일을, 재밌게 할 수가 있는 일을 찾을 것이며, 남는 여가 시간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며 결국은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데에 이바지를 하게 된다.
그럼 또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럼, 힘들고 어려운 일은 누가 하는가!’
맞다. 사는 게 쉬워지면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단지 어떤 일을 하느냐,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돈을 받았다면, 이 즈음부터는 남이 안 하려는 일, 하기 싫어하는 일에 경쟁력이 더 생긴다.(자본주의 원리가 그렇고 경쟁의 원리가 그런 것이다. 그게 싫으면 자본주의를 바꿔 보시던가! 아, 물론 남이 안 가진 능력을 가진 사람이 가지던 경쟁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한 고을 안에 갇혀 살던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경제 테두리가 달라졌고 사람들의 인식 또한 달려졌기에 왠만큼 살기 어렵다고 아주 편하게 살던 사람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던 때는 지났다고 본다.
즉 단지 경제 사정을 나쁘게 해서 경제의욕을 급격히 끌어올리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건 아무리 경제가 나빠져도 3D업종을 여전히 인력난이며 그 구멍을 새로운 경제약자가 채운다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흐름 위에서 더 나은 방향과 방법을 논의해야 발전인 것이지, 이런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공산주의 정책'(혹은 사회주의 정책)이라느니 욕하는 것은 무턱대고 싫고 싸우자는 것이지 결코 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더 이상 옛날처럼 이름 뿐인 이념 가지고 싸우던 때는 지났다.(사실 일찌감치 지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걸 가지고 싸운다.)
얘기의 중심은 아니지만 살짝만 살펴보자면, 솔직히 우리가 누리는 것들 가운데 ‘공산주의스러운’ 정책이나 그에 영향을 받지 않은 정책이 얼마나 되나!
내 자식 교육시키는 데에 모두의 세금이 들어가고, 내가 아프면 세금으로 때워주며 내가 나이들면 세금으로 도와준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영향이든 자본주의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자본주의를 ‘무조건’ 되돌리려거나 무조건 뒤엎으려는 이가 아니라면, 지금 자본주의 모습은 자본주의를 이어가고 발전시키는 데에 가장 알맞은 모습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즉 가장 자본주의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니 제발 무슨 가죽옷 입고 돌도끼 들고 토끼 쫓아다니던 시절 같은 얘기는 하지 말기로 하자.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무상급식’을 하려 했을 때도 했던 얘기처럼, ‘굳이 잘 사는 사람에게 까지 복지 혜택을 줄 필요가 있는가’, ‘보편복지가 보편화되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포퓰리즘 정책’이라느니 하는 얘기는 이미 철 지난 얘기이니 넘어가기로 하자.(스스로 보수정당이라던 당마저 결만 다를 뿐 복지정책을 세게 내세우고 있다.)
거꾸로, 선별복지를 하게 될 때, 선별 문제나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도 이미 많이 얘기되어 오던 것이니 넘어가자.
그것이 우리 경제력이 높아져서이건, 재난이 일상이 되어서건 간에 이런 식의 복지 정책이 좀더 잦아진다고 봤을 때 지금부터 그런 것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고 연구하고 실제 적용해 봐야 한다고 본다.(여기서 꼭 짚고 넘어 가자. ‘경제력’이 높아졌다고 해서 반드시 언제나 ‘경제’ 사정이 좋은 건 아니다. 몸이 튼튼하다고 해서 감기에 아예 안 걸리는 게 아닌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선별복지’가 완전히 그 값어치를 잃은 것도 아니다. 다만 큰 흐름이 ‘보편복지’ 쪽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지…
지금껏 해 오던 ‘선별복지’는 여전히 어려운 계층을 살펴야 할 것이며,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더 강화되고 발전되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역시 가장 좋은 쪽은, 어느 한쪽의 이름에 매달리지 말고 서로의 장단점을 잘 살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보편복지’를 비판하는 이 가운데 이것이 마치 ‘홍익인간’ 이념이나 호혜평등의 이념처럼 무슨 대단히 큰 값어치 때문인 양 하는 듯한 핑계를 대는데, ‘보편복지’가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값어치여서가 아니라 지금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 점도 분명히 했으면 싶다.

‘지금’이라는 때만 놓고 보자면, ‘좀 더 어려운 사람에게’라는 선별혜택이 말이 되는 듯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경기가 좋다가 갑자기 나빠진 때가 아니며 세계가 모두 경기 불황에 빠지던 때에, 또 세계 어디나 할 것 없이 ‘코로나19’ 때문에 더더욱 경제가 나빠졌고, 무엇보다도 경제 상황이 일정하게 나빠지던 때와는 달리 급변하는 상황에 따라 경제 사정이 나빠진 이들도 많으며 그 범위가 수준이 급변하고 있으며 이것이 조만간 끝나리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두루 살핀다면 지금부터라도 ‘보편복지’에 대해 살피고 실험하고 적용해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한 줄로 줄임 : 선별 재난지원금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보편복지를 실험하고 강화해 나가야 할 때라고 본다.(이 쉬운 얘기를 저렇게나 어렵게 한 거였어? ㅡ.ㅡ)
  • 덧붙임.
    아마 여당인 민주당 쪽에서 재난지원금을 선별지급하는 쪽으로 결론을 낸 모양인데, 그러면서 민주당 최고위원 ‘신동근’이란 분이 “고위공무원인 OOO나 제가 지원금 받을 이유 있냐”고 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한 때는 선별복지 쪽을 지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지지’라기 보다는 그 쪽에 좀더 기울었던 것이고 딱히 선별인지 보편인지를 살필 만큼 인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무상급식’, ‘무상복지’ 논쟁이 붙었을 때 저 역시 ‘왜 굳이 부자들에게까지 혜택을 주어야 하나! 그들은 이미 잘 살고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그 논쟁을 지켜보고 또 좀더 깊이 살펴보면서, 지금에서 복지는 단지 못 살고 불쌍한 사람에게 베푸는 적선이나 베풂[시혜]이 아니라 이 사회(자본주의!)가 발전한 혜택을 서로 나누는, 기름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지금 복지는 거지에게 던져주던 동전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