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

이 일을 보니 속상하고 슬픕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능가하니 어쩌니 하고 민간기업도 우주로 우주선을 쏘아 대는 이런 세상에도 아직도 우리의 사고 수준은 다분히 감정에만 사로잡혀 있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슬픕니다.
아마도 이 글에도,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혹은 말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혹은 제가 하지도 않은 얘기까지 어림짐작해서 비난의 댓글이 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래도 우리가 평소 좀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생각을 해 보자는 뜻으로 적어 봅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지 언론에 나온 것을 바탕으로 해서만 얘기한 것으로 미처 제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고려 팔만대장경 인쇄물을 일본의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다는 소식이 나왔고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하지만 언론에서는 하지 않는-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본이 등재 신청을 한 것은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팔만대장경으로 찍은 ‘인쇄물’입니다.(언론에서 이 중요한 걸 왜 빼먹는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이건 그냥 나쁜 정도가 아니라 언론의 본질을 벗어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출마한 사람은 모두 ‘대통령’으로 불러줄 판입니다.)

말 재주가 없어 길게 쓰면 괜히 오해만 많아질테니 짧게 요점만 써 보겠습니다.(거듭 말씀드리건대, 저도 언론에 나온 얘기로만 바탕 삼아 적는 글이므로 그 이면에 있을 수도 있는 문제는 저에게 꼬투리 잡지는 말아 주시고, 혹 실수가 있다면 바로 잡아 주시는 것은 좋으나 본질을 벗어나 비난 같은 것은 삼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우리 나라가 가지고 있는 건 판본이고 일본이 등재하려는 것은 종이(인쇄본)입니다.
  • 종속적인 인쇄본이 등재 자격이 되느냐는 오로지 (심사하는)위원회 소관입니다.(그런 까닭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미 한 차례 신청에서 탈락했다고 합니다.)
  • 신청 자체를 막을 아무런 구실도 없습니다. 설령 아주 바보 같은 것을 유산으로 신청한다 해도 비웃음만 사게 될 뿐 신청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 (훔쳐 갔다던지, 빼앗아 갔다던지 하는)불법적인 유물이 아니라면 (심사 결과와 상관없이)신청을 할 자격은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불법적인 것에 대해서는 따로 따질 문제입니다.(그런 것도 등재되어 있는 선례가 있다고 합니다.)
  • 원본(판본)이 우리 것인데, 그에서 나온 종속물을 등재하려는 건 마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논리를 펴시는 분이 계시는데, 유네스코 위원회가 따지는 것은 그것이 누구 것이냐가 아니라 역사적 값어치, 보존 값어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단오’라는 것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강릉 단오제’는 단오가 한민족 것이어서가 아니라 행사로써 보존 값어치가 있다고 보아 ‘강릉 단오제'(강릉에서 여는 단오제 행사)를 유산에 등재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좀 더 덧붙이자면 이건 소유권을 인정한 것도 아니고 단오제 전체를 아우르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강릉에서 여는 독특한 행사 그 자체 만을 유산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 실제로 동학농민전쟁 관련 기록물에 일본 쪽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일본에서 항의한 적이 있다고 하며, 유네스코 유산은 소유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연관성만 따지기에 함께 등재가 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식민 상황에서 피식민 지역의 유산이 식민 국가의 유산으로, 식민 지역의 유산이 피식민 지역의 유산으로 등재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즉, 어디에 있느냐만 따질 뿐 어느 지역, 어느 국가 소유냐는 따지지 않습니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이런 주장들이 다른 합리적인 주장에 대한 것까지 의심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제발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했으면 싶습니다.

클리앙에 올린 글 보기

  • 덧붙임.

한겨레신문에서 역사 지키기 활동을 하고 계시는 서경덕 교수의 주장을 빌어 기사를 썼는데, 그 논조가 알맞다 생각해서 덧붙여 둡니다.
서경덕 교수는, 앞서 사도광산이나 몇몇 가지 보기에서처럼 일본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에서 마저 제 나라에 유리한 역사만 쓰거나 제 나라 위주의 역사 서술을 한 전력을 들어, 그 원본이 조선 것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하신 모양인데, 이는 매우 알맞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일, 고려대장경 인쇄물 세계기록유산 추진? 서경덕 “한국 것 명확히 해야”
팔만대장경 인쇄본에 대한 등재 신청을 막을 까닭은 전혀 없습니다만, 올바른 사실이 적힐 수 있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